부동산 부동산일반

[위기의 건설산업] <1> 이대로 가면 모두 쓰러진다

"환란때보다 힘들다… '찔끔 대책'으론 약발 안먹혀"<br>"지금은 집구매 심리조차 없어 시행사 찾아와도 상대 안해"<br>"위기설 하나라도 나오면 금융권 바로 돈줄부터 조여"


[위기의 건설산업] 이대로 가면 모두 쓰러진다 "환란때보다 힘들다… '찔끔 대책'으론 약발 안먹혀""지금은 집구매 심리조차 없어 시행사 찾아와도 상대 안해""위기설 하나라도 나오면 금융권 바로 돈줄부터 조여" 정리=윤홍우 기자 seoulbird@sed.co.kr 정부와 한나라당이 잇따라 부동산 규제완화 시그널을 보내고 있지만 부동산 시장은 요지부동이다. 매수세는 실종됐고 아파트는 지어도 안 팔린다. 건설업계의 위기감은 극에 달했다. 9월 위기설, 연쇄도산설 등 흉흉한 소문만 시장에 나돈다. 특히 국내 주택사업에 치중해온 중견 건설사들은 은행 문 두드리기도 힘들다. '무능한 정부의 책임이다, 폭리를 취하는 건설사의 책임이다' 등 또다시 책임론만 난무한다. 서울경제신문은 48주년 창간 기획 시리즈 '위기의 건설산업 비상구를 찾아라'를 시작하며 우선 주택사업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기로 했다. 최정구 신동아건설 외주본부장, 조영호 월드건설 영업본부장, 김종욱 우림건설 전략기획실 본부장, 김대근 동문건설 영업지원부장 등 중견 건설사 관계자 4명이 바쁜 일정 속에서도 급히 자리를 함께했다. 허심탄회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취중 토크'식으로 진행했고 개별 회사의 민감한 입장을 감안해 발언자는 익명으로 처리했다. -요즘 건설업계의 사정이 좋지 않다. 일부에서는 건설업계의 위기가 외환위기 때보다 어렵다고도 말한다. 실상은 어떤가. A: 외환위기 때도 각종 규제가 지금처럼 심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규제란 규제는 다 갖다 붙여놓았다. 사업을 추진하는 건설사들에는 그게 무섭고 어려운 거다. B: 외환위기 때는 그래도 분양가 자율화, 양도세 면제 등 정부의 극복 노력이 있었다. 지금은 구매심리 자체가 없다. 그때는 그나마 수요라도 꾸준히 있었다. 지금은 살던 집이 안 팔리니까 입주도 안 된다. 건설사는 자금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잔금이 들어와야 사업 손익이 나오고 현금이 도는 건데…. C: 지난해까지만 해도 사업 좀 해보겠다고 우리가 시행사들을 찾아 다녔다. 좋은 사업장이 있다면 다른 회사가 채가기 전에 얼른 쫓아다니는 게 일이었다. 근데 요즘은 시행사가 땅을 갖고 와도 쳐다도 안 본다. 차 한잔 마시자고 해도 안 마신다. 우리보다 어쩌면 시행사가 더 힘들 것이다. 대출을 받아 땅을 사고 사업은 벌여놓았는데 집을 짓겠다는 시공사가 없다. ※지난 상반기 약 180개 건설사가 무너졌다. 하루에 한개꼴이다. 부도율이 외환위기 때보다 높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분양은 공식 13만채, 업계 추산 25만채로 사상 최대다. 미분양에 묶인 돈만 45조원. 여기에 세계 경기침체에 내수불황이 덮쳤다. 세제ㆍ금융ㆍ고분양가 족쇄로 소비심리는 극도로 위축됐다. 건축허가 건수는 지난해 3분의1 수준이며 체감경기 등 선행지표들은 사상 최악을 기록하고 있다. -고분양가가 미분양을 초래한 측면이 크다는 점에서 지금의 미분양 대란에는 건설사의 책임도 크지 않나. B: 건설사가 수요와 공급을 잘못 따졌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건설사가 사업을 진행할 때 토지 매입부터 시작해 아무리 짧아도 5년은 걸린다. 정부의 법안은 개정되면 경과가 겨우 6개월에서 1년이다. 딴 건 몰라도 주택법은 그러면 안 된다. 5년 전에 토지를 매입할 때부터 정부가 5년 후에는 분양가상한제에 들어가니까 땅 살 때 조심하라고 얘기했나. 우리는 자체적인 수요 공급만 갖고 했지 정부의 규제에 대한 예측까지는 못했다. 건설사가 100% 잘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모든 책임이 건설사에 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C: 외환위기 이후 건설업의 유통구조가 바뀌었다. 외환위기 이후 시행이라는 업종이 활성화되고 거기에 맞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금융이 생기면서 자기 돈을 안 갖고도 사업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됐다. 수많은 시행사들이 여기저기서 찌르다 보니 토지 값은 당연히 올라갔다. 과거에 비해 건설사의 수익이 크게 올라간 것은 없다. 수익 파이가 커졌지만 시행사ㆍ토지주ㆍ금융사ㆍ건설사 이렇게 같이 나눠먹게 되면서 분양가는 자연히 올라갈 수밖에 없다. D: 우리도 시행사를 안 끼고 자체 사업을 하고 싶다. 근데 우리가 돈을 빌리면 부채비율이 올라간다. 부채비율이 올라가면 금리를 세게 받는다. 자연스레 회사 재무구조가 나쁘다는 소리가 반드시 나온다. (고분양가) 구조가 그렇게 돼 있다. ※실제 모든 고분양가의 책임을 시공사 탓으로 보는 데는 무리가 있다. 주택사업은 땅을 사서 사업을 시작하는 시행사와 공사를 맡는 시공사 양 축으로 이뤄진다. 시공사는 브랜드 관리를 위해 미분양을 최대한 피하려 하지만 시행사들은 전면에 노출되지 않는데다 일부 시행사들은 '먹튀(먹고 튀기)' 성격도 있어 고분양가를 고수한다. -정부에서는 여전히 지방 미분양이 이렇게 심각해진 것은 과거 부동산 호황기에 우후죽순처럼 지방으로 몰려든 건설사들 책임이 크다고 하는데…. D: 지방에 대해 확신을 심어준 것은 정부다. 정부가 혁신도시ㆍ기업도시를 웬만한 지방에 모두 공약했다. 그게 적어도 지난 정부 후반기에는 가시화될 것으로 생각했다. 건설사들은 어떻게 보면 정부 정책에 발을 맞춘 것이다. 막상 갔는데 우리만 사업을 시작하더라. 토지 보상가는 정부가 이전하는 곳 주변 지역까지 다 같이 올라갔다. 보상받은 사람들은 수도권으로만 다시 몰려간다. 예측 불가능한 정부의 공약을 따라간 우리 잘못도 있지만 원인 제공을 한 쪽도 있다. -금융권이 건설업계를 바라보는 태도가 올해 들어 정말 많이 차가워졌나. 피부로 느끼는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 A: 위기 루머 하나라도 시장에 잘못 유포되면 바로 금융권에서 자금담당부서로 전화가 온다. 예를 들어 주력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최근 사업지를 일부 팔았는데 막상 시장에서는 우리가 어려워 사업지까지 판다고 부도 위기 루머가 유포된다. 물론 컨설팅을 해준 금융사들은 충분히 이해하는 사안이지만 사정을 잘 모르는 다른 금융사들은 오해하는 곳도 있다. B: 요즘 금융사들은 아예 좀 큰 건설업체가 1~2개 부도가 나야 정부의 대책이 나올 것이라고 보는 곳도 있다. 근데 이거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다. 우리 정도 수준 되는 중견 건설사 1~2개만 무너져도 협력업체까지 해서 모두 도미노로 무너진다. 한 회사마다 등록된 협력업체만 1,000개가 넘는다. 정부가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만약 어디가 무너져 규제완화를 위한 여론이 호전되기를 기다린다면 그건 상당히 무책임한 것이다. ※금융권이 건설업계의 돈줄을 죄기 시작했다. 시중은행들은 현재 건설업체들의 신용평가를 다시 하는 동시에 대출심사를 강화하고 있다. 하반기 중으로 신용등급을 재평가한 후 대출금리도 조정할 계획이다. 저축은행들의 경우 지난 2005년 말부터 2~3년 만기로 부동산 PF 대출을 집중적으로 집행, 올 하반기 대규모 연체사태를 맞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사실 위기 루머가 더 위기를 키우는 측면도 있다. 모두 불황인데 유독 건설업계에 이렇게 루머가 많은 이유는. D: 이 바닥은 이해관계자가 너무 많다.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게 건설사업이다. 한 프로젝트당 수많은 협력업체가 생기고 또 없어진다. 사업 파트너하고 조건이 안 맞아 일이 틀어지면 서로 원수지간이 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항상 화기애애한 상생의 관계가 아니다. 다른 데 가서 우리한테 부정적이고 섭섭했던 얘기들만 유포하기도 한다. B: 지난번에는 한 시행사가 우리한테 사업을 하자고 했는데 우리가 검토해보고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해 거절했다. 그런데 그 시행사가 다른 데 가서는 우리한테 가보니 그 건설사는 PF도 안 되는 회사더라고 얘기를 해버린다. 그런 루머가 돌기 시작하면 또 미치는 거다. ※최근 건설업계에 떠도는 루머는 수십여개. 연내 회사채 만기를 앞둔 건설사들을 중심으로 급속히 부도 루머가 유포되고 있다. 심지어 시공능력평가 10위 내 건설사가 곧 매각될 것이라는 소문까지 공공연히 시장에 나돌 정도다. 일부 루머가 실제 신빙성이 있을 수도 있지만 경쟁사를 죽이는 전략으로 삼거나 주가조작 세력들이 이를 이용하고 있다는 추측도 일각에서는 나오고 있다. -정부 대책이 꾸준히 나오고 있고 규제완화 시그널도 보이는데 시장이 냉소적인 이유는. A: 지난 정부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대책이란 것이 고양이 오줌 싸듯 찔끔찔끔 나오는 게 문제다. 국토해양부 산하에 위원회를 만들고 대형ㆍ중견 건설업체, 협력업체 대표 등이 모두 참여해 같이 한번 대안을 만들어보는 것이 어떻겠나. 어렵다 어렵다 우는 소리하면 대책 한번 또 찔끔 나오고 이런 식이라면 전혀 효과가 없다. 뭔가 특단의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진짜 어려운 상황이다. C: 내년까지는 경기가 계속 안 좋을 것이라고 보고 있고 정부 대책도 올 하반기 또는 내년 초에나 나올 것이라고 한다. 정부도 집값 폭등이 무서워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건설업체들이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공급계획을 너무 줄이고 있다. 우리 같은 경우는 90%나 줄였다. 이대로 가면 2~3년, 3~4년 후에는 자연스레 다시 공급부족이 생기고 다시 집값이 폭등할 염려도 있다. ※이날 토론은 저녁에 2시간 동안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참석한 건설사 관계자들은 "외환위기 때는 건설사 부채비율이 500% 안팎이었다가 요즘은 180% 정도로 낮아졌지만 워낙 미분양이 적체돼 있어 현금 유동성이 잘 돌지 않아 애로가 있다"며 정부에 조속한 규제완화책을 촉구했다. 요즘 적지 않은 건설사들이 저축은행 측에 회사의 실상을 제대로 알리는 데 힘을 쏟거나 위기루머설을 잠재우느라 분주하다고 털어놓는 대목에서는 현장의 급박한 위기의식을 실감할 수 있었다. 다만 이런 상황에서 건설사들이 정부에 각종 규제완화를 촉구하면서 동시에 자체적으로 소비자들의 피부에 와닿을 만한 뼈를 깎는 자구책을 내놓는다면 좀더 효과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석자: 최정구 신동아건설 외주본부장, 김종욱 우림건설 전략기획실 본부장, 조영호 월드건설 영업본부장, 김대근 동문건설 영업지원부장, 서울경제 부동산부 고광본 차장, 윤홍우 기자, 서일범 기자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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