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12월 18일] 미소금융에 쫓겨난 노숙자들

지난 15일 오후 수원시 팔달구의 영동시장 상인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TV에서나 볼 수 있는 고위관리와 경제계 명사들이 영동시장에 들어선 미소금융 1호점 개관식에 대거 '행차'했기 때문이다. 10평도 안 되는 개점 행사장은 여당 중진인 남경필 의원과 진동수 금융위원장을 비롯해 김문수 경기지사, 김용서 수원시장, 김승유 미소금융중앙재단이사장 등 거물급 인사과 취재기자들로 북새통이었다. 재래시장의 낡은 건물 2층 구석에 쪽방처럼 붙어 있는 9평짜리 금융 지점을 하나 여는 것인데도 분위기만 본다면 마치 대형은행 본점이라도 들어서는 것 같았다. 해당 미소지점을 연 삼성그룹 임원들도 기대 이상의 행사 흥행에 잔뜩 고무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날 행사에서 미소금융의 주인공들은 정작 철저히 소외됐다. 지점에서 금융상담 봉사를 하게 될 담당자들은 이날 행사는 물론이고 사무실에도 출근하지 못했다. 금융상담을 받으러 아침부터 어렵게 수소문해 사무실을 찾아온 서민들도 허탈한 표정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더구나 미소금융 1호점이 들어선 곳은 원래 인근 시장 상인들을 위한 탁아소 자리였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전 미소금융 사무소를 연다며 탁아소가 헐렸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탁아소 자리는 맞지만 상인들이 잘 이용하지 않아 노숙자들이 잠자는 데 쓰고 있었다"며 "그 곳을 미소금융 자리로 활용하는 것이니 좋지 않으냐"는 반응이었다. 그렇다면 쫓겨난 노숙자들은 이 추운 겨울을 어디서 나야 할까. 마침 15일은 올 들어서도 가장 추운 날이었다. 서민 금융기관이 들어서기 위해 극빈층이 겨울철에 길바닥으로 내몰려야 하는 역설에 기자는 씁쓸한 '미소'를 지어야 했다. 과연 미소금융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대통령? 고관 대작? 돈을 출연한 기업과 은행? 조연이어야 할 이 사람들은 매스컴에서 주인공이 돼 있었다. 반면 주인공인 미소금융 자원봉사자들과 서민들은 보이지 않았다. 주인공을 잃은 미소금융은 누구를 위한 용비어천가가 될 것인가.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