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어머니와 짜고 친부를 살해한 사건에 대해 법원이 가해자가 피해자로부터 극도의 학대를 받은 사실을 인정해 이례적으로 형량을 감경해 선처했다.
서울고법 형사7부(고영한 부장판사)는 아버지를 살해해 1심에서 징역 15년이 선고된 권모(28)씨에게 징역 12년을, 남편을 살해해 1심에서 징역 10년이 선고된 심모(52.여)씨에게 징역 6년을 각각 선고했다고 27일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사전 공모한 후 피해자를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해 죄질이 매우 불량해 엄중한 처벌이 요구된다. 하지만 평소 상습적 폭력과 폭언을 당해 피해자를 죽이는 일만이 살 길이라는 점에 의견이 일치된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권씨의 어린 시절부터 숨진 부친이 방앗간 기계에 피고인의 머리를 밀어넣고 장롱 앞에 서게 한 뒤 칼을 던지고 목을 조르는 등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폭력을 가해 범행 당시 만성화된 `매맞는 아이 증후군'을 앓게 됐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또 피해자의 아내인 심씨도 의처증을 갖고 있던 피해자로부터 맞아 다리를 절게 됐고 잠자리에서 목을 졸려 기절하기도 했으며 짐을 제대로 못 든다고 발길질을 당하는 등 범행 당시 `매맞는 아내 증후군'을 앓고 있었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숨진 피해자는 가정에서는 자기중심적으로 가족을 억압하면서도 밖에서는 예의바르고 따뜻한 사람으로 처신하는 등 이중적 모습을 보여 피고인들의 불만이 극도로 쌓였고 이혼을 요구하자 가족을 몰살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생명은 어떤 가치보다도 소중한 것으로서 피해자의 생전 행위에 대한평가 여하를 불문하고 절대 보호돼야 할 가치"라면서도 "피고인들이 자신의 손으로 남편이자 친부인 피해자를 살해했다는 정신적 멍에를 평생 짊어지고 살아갈 것인 점,우발적 범행인 점, 범행을 깊이 뉘우치는 점 등을 감안해 감경한다"고 덧붙였다.
국내에서는 가정폭력이 갈수록 사회문제화하는 가운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한 `매맞는 여성 증후군'을 감안해 피고인의 정당방위 주장이나 심신미약 상태를 인정한 판례는 극히 드문 상태다.
이번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지속적인 폭력을 경험해 범행 당시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에 따른 `매맞는 아이ㆍ아내 증후군'을 앓았다는 점을 인정해 형량을 감경했다.
그러나 변호인측의 `사물 변별 및 의사 결정 능력이 없었다'는 주장은 인정하지않았다.
권씨는 모친 심씨와 함께 지난해 12월 초 강원도 횡성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부친을 둔기로 살해하고 사체를 버렸다가 경찰에 적발돼 `패륜 모자'로 지탄을 받았으며 이들은 1심에서 살인죄 등으로 각각 징역 15년, 징역 10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