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週末), 차가 다니지 않는 대학로(大學路)·인사동거리를 걷다보면 어느 한귀퉁이 맨땅에 자리를 잡고 관상·손금·운수(運數)를 봐주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복잡한 길바닥에서 별로 장사가 될 것 같지 않은데 이따금 나이 어린 처녀들이 텁수룩한 사람 앞에 쪼그리고 앉아 무언가 열심히 묻고 듣는 모습이 재미 있어 보인다.
「또 속는구나」싶으면서도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고픈 답답함이거나 어떻게 좋은 말 한마디라도 들을 수 있을까 하는 간절한 심정 또는 자기들 끼리의 심심풀이이겠지 짐작하며 지나친다.
사람들이 속이 허해서 그런지 요즘같은 때에도 점치는 집을 찾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족집게라고 소문이라도 난 집에는 번호표를 받고 차례오기를 기다려야 할 정도라고 한다.
자식들의 입학·결혼·취직·새로 시작하는 사업·신상변화·작명(作名) 등 별의별 문제들을 다 가지고 간다. 뿐만 아니라 점쟁이의 말은 주술(呪術)같아서 어느 누구의 말보다도 강한 영향력을 끼친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궁금증과 불안감 때문에 점을 치는 것이겠지만 그 밑바닥에는 세상만사 반드시 실력대로, 노력한 만큼 되는 것이 아니라는 현실적 체험이 깔려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거대한 힘이 작용해서 자기도 모르게 일이 잘 풀릴 수 있고 계속 얽히기만 해서 애를 먹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부인 못하는 인간적 약점이다. 그래서 운(運)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골프 치는 사람들은 「운(運)7·기(技)3」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자기 기량(技量)보다도 그날의 운이 스코어를 70%나 좌우한다는 뜻이다.
잘 안 맞은 것에 대한 핑계, 자위(自慰)의 소리 같기도 하나 실제로 볼이 벙커에 잘 들어가는 날도 있고 나무에 맞고는 더 깊은 수풀 속으로 날아가는 날도 있다. 겨울골프가 되면 더더욱 「운7·기3」을 실감한다.
며칠전 한 일간지의 어떤 신문기자가 『은행임원들이 자기들의 처지를 돌아보며 「운(運)9· 기(技)1」이라는 자조적인 말을 한다』는 글을 썼다. 은행임원으로 승진하고 살아남는 결과를 평가할 때 운이 90%인 풍토라는 것이다. 모든 것이 실력이나 각고(刻苦)의 노력보다는 운수소관에 달렸고 운수소관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이기도하다.
본래 은행이 갖는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은행임원들이 그런 실정이라면 다른 분야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정권이 자주 바뀌는 과정에서 정치인·기업인·고위공직자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운(運)도 실력이라는 말도 있다지만 과연 어떤 것이 가장 현명한 세상살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