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민들레 홀씨처럼

이공계 장학금을 받은 대학생들이 졸업 후 다른 분야로 진출하는 이른바 '먹튀 장학생'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정부는 지난 2003~2009년 7년간 이공계 대학생에게 4,706억원을 지원했고 이 장학금을 받은 학생 중 상당수가 의사나 변호사가 되기 위해 진로를 바꿨다. 장학금 수혜자 중에서 이공계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학생은 절반이 채 안 된다. 이공계 장학금제도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이런 상황을 반영해 의학전문대학원이나 로스쿨로 진학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환수하는 규정을 추가한 이공계지원특별법 개정안이 조만간 시행될 예정이다. '먹튀 장학생' 비난해선 안돼 그러나 이공계 장학생들의 타 분야 진출을 단순한 '먹튀'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이는 일부 대학의 자유전공학부 학생들이 고시나 로스쿨ㆍ의학전문대학원으로 몰리는 것과는 의미가 다르다. 먹튀로 불리는 이공계 이탈 학생들의 몸에는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이공계 DNA'가 생겼기 때문이다. 한번 생긴 이공계 DNA는 잘 사라지지 않는다. 이는 이공계를 졸업한 학생이 어떤 진로를 택해 어떤 직업을 가져도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공계 DNA는 이공계에 대한 애증을 심어놓기 때문에 그들이 서 있는 자리에서 이공계 발전을 위해 손을 들고 입을 열게 만든다. 외국에 사는 교포들이 평생 고국을 잊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사람이라고 모두 이 땅에서 살 필요가 없듯이 이공계 출신이라고 모두 이공계 분야로 진출할 필요는 없다. 이렇게 강력한 DNA는 이공계에 발을 들여 놓으면 자연스럽게 생기게 된다. 이공계 학문은 주로 숫자를 다루기 때문에 문ㆍ사ㆍ철(文ㆍ史ㆍ哲)에 비해 다소 딱딱하다. 무엇보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지, 결코 하나도 셋도 될 수 없다는 것이 이공계 학문의 기본이다. 남아도 안 되고 모자라도 틀린다. 융통성은 용납되지 않는다. 선(線)으로 보면 곡선보다는 직선에 가깝다. 그래서 이공계 학과에서 공부한 뒤 자신의 전공과 동떨어지는 일을 하는 사람들도 '이공계 출신'의 특징을 갖고 있다. 고작 대학 4년 동안 이공계 공부를 했다고 정말 성격과 성향이 달라질까. 누가 이런 질문을 한다면 이공계 출신인 내 대답은 '그렇다'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정부의 이공계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이 의학전문대학원을 가던, 로스쿨로 진로를 바꾸던, 혹은 금융 분야로 진출하던 막을 이유가 없다. 이공계 장학금을 받은 뒤 이공계를 떠났다고 비난할 일도 아니다. 오히려 장학금을 받은 이공계 학생들의 진로를 꽁꽁 묶어 두는 것은 국가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의사나 법관이 되려고 하면 이미 받은 장학금을 국가에 되돌려줘야 한다는 주장은 더더욱 설득력이 없다. 세상의 모든 일은 '액션' 때문이 아니라 '리액션' 때문에 일어난다는 말이 있다. 먹튀 장학생 문제도 이공계를 이탈한 학생들의 액션이 아니라 그들에게 채찍을 휘두르려는 어른들의 리액션이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학생들을 이공계 분야로 몰아넣으려 하지 말고 이공계 분야의 여건을 개선시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들의 DNA 곳곳에 퍼져야 선진국들처럼 이공계 대학원생들에 대해 국가가 전액 장학금을 지원해야 한다. 또 정치권이 주장하는 '반값 등록금'도 소득 하위 50%가 아니라 이공계 학생들을 우선으로 선정해야 한다. 그러면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공계로 인재가 모이게 돼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융ㆍ복합의 수용 능력에 달려있다. 대한민국이 발전하려면 이공계 출신 의사ㆍ판사ㆍ검사ㆍ변호사가 필요하고 이공계 출신 행정가ㆍ정치인ㆍ기업인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 민들레의 생명력이 강한 것은 바람을 타고 홀씨가 사방으로 퍼지기 때문이다. 이공계 육성을 위한 '민들레 홀씨 정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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