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수필] 朴대통령의 회의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서거 20주년을 맞으니 생전에 회의를 주재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60년대엔 매월 한번씩 경제기획원에서 월례경제동향회의라는 걸 열어 한달간의 경제동향을 총점검했다.朴대통령이 맨 앞에 앉고 당시 여당인 공화당 간부와 경제각료들, 청와대 수석들, 관계부처 고위 간부들이 참석해 브리핑받고 현안 문제를 토론하는데 회의 분위기가 매우 엄숙하고 긴장감이 돌았다. 경제기획원 출입기자도 두명씩 교대로 들어갔다. 기획원 담당국장이 브리핑 차트를 지휘봉으로 넘기면서 설명하는데 미진하다 싶으면 부총리(경제기획원장관 겸직)가 지휘봉을 뺏어들고 대신 설명을 하기도 했다. 쌀값· 연탄 문제가 단골 메뉴였으며 합판이나 가발 수출이 좀 늘면 온 회의장에 희색이 만연하곤 했다. 회의는 보통 2시간 넘게 걸렸다. 朴대통령은 가끔 담배도 피우고 메모도 하지만 좀체로 말을 않고 곧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회의가 끝나면 朴대통령이 하는 몇마디 촌평에 따라 경제부처의 희비가 엇갈렸다. 『요즘 쌀값은 조용하더구먼』 하면 기획원과 농수산부가 싱글벙글하고 『요즘 철판이 일본으로 잘 안 나간다며』하면 상공부에 비상이 걸린다. 한번은 경기가 아직 괜찮으냐, 나빠지고 있느냐를 둘러싸고 토론이 벌어졌는데 朴대통령은 끝까지 아무 편도 들지 않고 듣기만 했다. 그러나 거기서 한번 결론이 나면 곧바로 집행에 들어가기 때문에 각 부처에선 주전 선수들을 배치하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 뒤 5공 때도 같은 회의를 같은 방식으로 한 적이 있는데 회의 벽두에 전두환 대통령이 『요즘 경기가 나쁘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하면서 경기가 좋은 이유를 쭉 설명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회의도 시작하기 전에 결론을 내버린 것이다. 朴대통령에 대해 이래저래 말이 많지만 회의의 분위기를 잡고 관료들을 긴장 속으로 몰아넣어 모여도 중요한 문제를 논의하지 않고(會而不議), 논의해도 결론을 내지 않고(議而不決), 결론을 내도 실천하지 않는(決而不行) 통폐를 척결했다는 점에서 정말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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