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성리학을 근간으로 삼은 점잖은(?) 나라 조선이지만, 그 시절에도 '야동'이 있었으니 바로 춘화(春畵)다. 그림 실력이 좋았던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은 춘화 쪽에서도 탁월했다. 김홍도의 낙관이 있기에 그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화첩 '운우도첩'에는 다양한 성행위의 장면이 담겨 있는데,파격적이다. 청춘 남녀가 등장하는가 하면, 노년의 내외가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간혹 여성 둘에 남성 한 명을 등장시킨 구성도 있으며, 남녀의 신분도 다양해 성에 대한 흥미에서 더 나아가 인간 군상을 통한 요지경을 보여주고자 한 의도가 엿보인다. 즉 춘화를 풍속화의 한 갈래로도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운우도첩'은 그러나 여느 춘화첩과는 달리 격조가 있다. 장면 설정에서 산수화의 기본적인 구도를 이어받아 단순한 성적 자극에서 벗어난 볼거리를 제공한다. 또 야외가 아닌 실내장면에서는 인물 외에 주변 소품들을 꼼꼼하게 그려 당시 생활을 추론할 수 있게 했다.
그런가 하면 신윤복의 그림으로 전해지는 '건곤일회첩'에는 훗날 추사 김정희의 제자인 역관 이상적이 쓴 이런 발문이 있다."빼어난 미색은 가히 저녁 반찬이 된다는데/천 년을 이어져온 아름다운 이야기를 그대에게 바친다/ 날마다 미인의 살결과 품속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 어찌 원제(元帝)의 풍정이 부럽겠는가?" 원제는 전한(前漢)의 황제로 화공에게 궁녀의 모습을 그리게 해 그 중 밤을 같이 보낼 여자를 택했던 인물이다. 춘화의 기능이 춘흥을 돋우는 데 있음을 말해주는 글이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펴낸 '그림으로 본 조선'은 그림을 매개로 한 조선의 역사책이다. 미술사 서적과 다른 점은 예술작품으로서의 회화가 중심이 아니라 당시의 과학, 군사, 사상, 교육, 문학, 종교 등 여러 분야의 문헌에 실린 그림을 바탕으로 역사를 읽어내고 있다.
조선이 유학 이론만 읊어댄 나라가 아니라 일정 수준의 군사력을 확보하고 이를 적극 운용한 왕조였다는 사실은 '무예도(武藝圖)'가 입증하고 있다. 무예도는 병법과 전술, 군사장비의 변천사를 보여준다. 함경북도 병마절도사 장양공 이일이 1588년 300여채의 여진 부락과 500여명의 여진족을 토벌하는 장면을 그린 '장양공정토도'는 병사 하나하나의 움직임까지 포착했다. 이어 임진왜란 때 조선은 일본군의 조총 사격전술에 당하고서 명나라의 화포·화전 대량사격 같은 전투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명나라 군대는 화포와 불화살로 적의 기세를 꺾은 뒤 단병기를 든 군사들로 근접전을 벌였는데, 조선은 이런 명군의 '절강병법'을 받아들여 왜군에 대응하기로 했다. 1598년 편찬한 우리나라 최초의 무예서인 '무예제보'는 이런 절강병법 등 새로운 무예를 보급하기 위한 것이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기병이 강화되는 등의 양상이 '무예도보통지'를 비롯한 군사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그림들을 통해 조선의 국방정책까지 들여다 볼 수 있다.
11명의 전문가가 항목별로 집필해 책을 엮었다. 천지도(天地圖)는 조선의 과학관을, '삼강행실도' 등은 당시의 윤리관을, 털 하나도 놓치지 않고 그리라 했던 초상화는 사대부들이 추구한 이상적 인간상을 짐작케 한다. 2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