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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근무자 65명 중 52명 빈자리… 컨테이너 너무 쌓여 사고 우려
10~15% 화물차가 담당하지만 운임 비싼데다 운송 거부까지
지방 시멘트공장 가동 중단에 수출 차질로 해외 신뢰도 훼손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24일 의왕컨테이너기지(의왕ICD). 수도권 물류의 중심인 의왕ICD는 보름 넘게 계속되는 철도노조 파업으로 화물열차 운송이 줄면서 직격탄을 맞은 곳이다.
컨테이너를 실어 나르는 화물열차가 부지런히 지나가야 할 화물역인 오봉역은 이날 삭막하다 못해 을씨년스러웠다.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렸지만 화물열차는 미동도 하지 않았고 새로 들어오는 열차도 없었다. 한 켠에는 실어 날라줄 열차를 기다리다 지친 컨테이너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이윽고 기다리던 컨테이너 열차가 들어왔지만 그나마도 군데군데 이가 빠진 모습이었다. 원래는 컨테이너 33개가 들어가야 할 화물칸 자리에 가운데 7자리는 휑하니 비어 있었다.
오봉역 관계자는 "열차운행이 줄어 컨테이너 물량을 부산 같은 다른 기지로 돌리다 보니 저렇게 군데군데 빈 열차를 운행할 수밖에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의왕ICD는 원래 하루에 72개 열차가 운행돼야 하지만 직원들이 파업으로 빠져나가면서 32개 열차밖에 운행되지 못하고 있다. 평소 운행량의 44%밖에 소화를 못하고 있는 것. 이 때문에 부산항의 수출입화물, 경북 지역의 시멘트·석탄 화물, 순천과 광양 등의 컨테이너 중계 화물의 수송이 큰 차질을 빚고 있다.
조영해 오봉역장은 "지금은 잇몸으로 버티고 있지만 컨테이너 물량이 평소보다 20% 이상 뛰어오르는 구정(1월30~31일)까지 파업이 이어지면 말 그대로 물류대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오봉역의 한 직원은 "3교대 2조로 하루 12시간 이틀 일하고 하루 쉬던 것이 지금은 하루에 24시간 통으로 일하고 그 다음날 쉬는 시스템으로 일하고 있다"며 "많은 직원들이 업무강도가 너무 세져서 힘들어하고 있다"고 전했다.
철도 파업으로 인한 위험은 이뿐 만이 아니다. 의왕ICD는 4만5000TEU(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의 컨테이너를 수용할 수 있는데 평상시에는 60%의 수용률을 유지한고 있다. 그런데 파업으로 제때 물량을 소화하지 못하다 보니 이 수송률이2%~3%포인트가량 올랐다. 수용률이 70%를 넘어가면 공간이 좁아져 컨테이너를 위로 쌓아야 해 작업 효율이 떨어지고 안전사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철도 운행이 줄다 보니 화물차 운송량이 급격히 늘었다. 철도노조 파업 이후 의왕ICD 관계자에 따르면 평소 열차가 담당하던 운송량의 10~15%를 화물차가 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방증하듯 이날 2시경 컨테이너 기지 앞 ICD 사거리는 화물차 20여대가 몰려 극심한 혼잡을 빚고 있었다. 사고가 난 것도 아닌데 30분이 넘도록 화물차들이 자리에 서서 꼼짝못했다.
한 컨테이너 화물차 기사는 “파업 이후 물류업체에서 화물차를 늘리면서 이런 교통 혼잡이 예사로 벌어진다”며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은 생산 물량을 해외로 내보내고 받아야 할 기업들이다. ICD에 입주하고 있는 한 시멘트 업체는 “이맘때는 하루에 컨테이너 40~60개를 처리해야 하지만 지금은 겨우 20개 정도 처리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이 때문에 생산량을 제 때 처리하지 못해 지방의 생산 공장 가동을 중단하는 등 하루하루 막대한 손해를 보고 있는 실정”이라며 “한 마디로 소화가 안 돼 배만 불거진 상태를 생각하면 된다”며 울상을 지었다.
다른 수출업체의 한 관계자는“계속 이런 식으로 물량을 제 때 처리하는 데 차질을 빚을 경우 해외 업체와의 신뢰에 금이 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며 “구정 때까지 파업이 계속되면 기업 자체가 주저 않을 수도 있다”고 호소했다.
물류업체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한 물류 업체 관계자는 “평소 철도로 물량의 20%를 소화했는데 이 비율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며 “중요한 품목은 화물차가 아닌 열차로 실어 날라야 하기 때문에 화물차 수송을 늘려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물류업체 관계자는 “화물차 운임이 2배 가까이 비싼 외부 화물차를 동원해야 하는 데다 그나마도 민주노총 화물연대에 소속된 일부 트럭기사들은 철도파업으로 인한 대체 수송을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큰일”이라며 “화물차를 운행할 수 있는 양도 한도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요즘에는 수송 주문이 들어와도 물량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철도 파업으로 인한 수출업체들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코레일이 24일 집계한 ‘철도파업에 따른 일간 미수송 예상 물량 현황’ 자료에 따르면 이번 파업기간 1일 평균 화물 수송 물량은 1만8943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만8333t이 감소했다. 파업 16일째인 이날 현재를 기준으로, 파업기간 수송되지 못한 원자재 물동량은 총 61만3328t에 달한다.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는 시멘트의 경우 파업 이후 하루 평균 수송량이 1만2376t으로, 평시였던 1년 전에 비해 2만1906t이 수송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시멘트 평균 가격이 t당 7만3600원인 점을 감안하면, 24일까지 피해액은 총 258억 원에 달한다.
화물열차 운임손실액도 64억 원에 달해 코레일 자체의 손실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하루 평균 운행이 중지된 화물열차는 170편으로, 지금까지 모두 2382편의 화물열차 운행이 중단됐다. 코레일 관계자는 “1일 평균 화물 운임 손실액이 4억 원인 점을 감안하면 24일까지 모두 64억 원의 손실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특히 컨테이너 운송 차질로 연말 수출입 물동량 수송에 피해가 예상되고 파업 기간도 길어지면서 2009년 파업 당시보다 수출 피해액이 커질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한 업체 관계자는“철도 파업이 정치적인 다툼으로 번지고 있는데 모두가 공생하기 위해서라도 파업을 멈춰달라”고 하소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