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월과 2월에는 기업마다 정기인사로 술렁이기 마련이다. 올해는 정치자금 스캔들에 휘말려 일부 회사를 제외하고는 인사가 늦어지는 느낌이다. 정기인사와 맞물려 지난 4~5년 동안 어렵게 시행해온 사외 인사도 선임하게 된다. 기업 지배구조는 자본시장과 투자가들의 최대 관심사항인데 그 핵심은 무엇보다 사외이사제도의 시행과 투명성으로 정리된다. 미국에서는 2년 전에 엔론ㆍ월드컴ㆍ타이코인터내셔널 등에서 대규모 금융스캔들이 발생한 후 사외이사의 책임과 의무에 대해 논의가 확산되고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최근에는 리처드 그라소 뉴욕증권거래소(NYSE) 전 회장의 보수문제와 월트디즈니사의 소액주주소송 등이 알려지면서 다시 사외이사의 책임문제에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외이사는 회사와 주주를 위해 맡겨진 의무를 충실히 하고 과거의 관행과 다르게 경영층보다는 주주 쪽에 비중을 더 높이 둬야 한다는 의견이 강해지고 있다.
이사회는 회사의 핵심 경영정책을 결정하고 경영자의 활동을 지도 감독하는 조직으로 회사와 주주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그 책임을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 이사회는 구체적으로 사업의 목표와 전략의 설정, 사업계획과 예산의 승인, 경영의 평가와 교체, 인사와 보수의 문제, 회계와 금융에 관한 사항 등을 논의 결정한다. 형식적으로 이름만 걸어놓고 적당히 보수나 받고 경영층의 입맛에 맞는 거수기 노릇만 하는 것이 아니다. 사외이사들은 경영자들과 더불어 한 팀이 돼 회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일을 성심껏 수행해야 한다. 요즘 미국에서는 최고경영자(CEO) 이외에 모든 이사를 사외이사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사회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회사의 주요이익(core competence)이 어디서 발생하고 그 비용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를 아는 것이다. 돈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회사의 내용을 구석구석 자세히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다음으로 주요자산 중 외상 매출금이나 재고의 변화를 눈여겨봐야 한다. 매출증가보다 채권이 더 많이 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매출을 무리하게 늘리려고 외상조건을 완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등을 세밀히 확인해야 한다. 세번째, 소위 긴급대응계획(contingency plan)이다. 기업에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경우에 대비한 전략이 무엇인가, 제일 큰 거래선이 떨어져 나가거나, 갑자기 신용이 나빠지거나 축소되는 등의 경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등을 알아야 한다. 화불단행(禍不單行)이란 말이 있다. 예상치 못한 나쁜 일은 또 다른 화를 부른다는 옛 말을 교훈 삼아 회사 내에 소위 회로차단기를 준비해야 한다.
네번째, 경쟁자와 비교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업은 어떻게 해서든지 매출을 늘리고, 비용을 절감하며, 이익을 최대한 늘리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 내용이 경쟁업체와 비교해서 지나치게 높거나, 낮은 것은 특히 주의 깊게 보아야 한다. 회계 숫자상의 분석뿐만 아니라 경쟁자에 대한 전략적 분석도 따라야 한다.
아울러 만일의 경우에 최고경영자를 대신할 사람은 누구인가도 확인해야 한다. 미국 군대에서 장교는 만일의 사태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 자신을 대신할 부하를 항상 지정해야 한다. 최악의 경우 최고경영자가 대체될 수 없게 되면 기업이 망할 수도 있다. 경영자 개인의 운명보다 회사의 운명이 훨씬 중요하다는 생각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사회는 오늘의 경영자와 더불어 내일의 경영을 책임질 사람에 대해 항상 생각해야 한다.
성장전략도 살펴야 한다. 모든 기업은 성장을 추구한다. 이 성장전략이 기존사업을 기본으로 새로운 상품을 도입하려는 것인지, 인수합병으로 가려는 것인지를 살피고 현경영과의 접목이나 시너지 효과를 가늠해야 한다. 끝으로 미래에 발생할 미발생 채무액, 최고경영자의 보수, 조직의 유연성 등을 면밀히 살피고 파악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개방경제하에서는 발전가능성이 무한히 열려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헤쳐나가야 할 경쟁과 어려움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치열하다. 국경 없는 무한경쟁에서 살아 남아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사회ㆍ경영자 그리고 주주가 혼연일치해서 경영의 효율을 높이기에 힘써야 한다. 주식이 공개되지 않은 많은 미국기업이 이사회가 없는 대신에 경영자문회의(advisory committee)를 두고 경영효율을 높이려 노력하고 있는 점도 배울 만한 일이라 하겠다. 이사회와 경영자문회의는 경영자를 견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함께 기업을 키워가려는 공동체라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영만 재미한국상의 명예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