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구랍 31일 농민사망사건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허준영(許准榮) 전 경찰청장 부부를 청와대 관저로 초청, 만찬을 함께 한 것으로 2일 알려졌다.
부인 권양숙(權良淑) 여사도 자리를 함께 한 이날 만찬은 노 대통령이 허 전 청장을 위로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라는게 청와대 관계자의 전언이다.
허 전 청장이 청와대를 비롯한 여권의 사퇴 압력에 대해 "사퇴를 고려하지 않는다"고 맞섬으로써 청와대와 경찰의 갈등으로까지 비쳐진 마당에 `위로 만찬'은 다소의외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역으로 이번 경찰청장 사퇴 논란에 대한 노 대통령의 입장을 보여주는 자리이기도 하다. 즉 `허 청장의 판단을 존중하겠다'고 했던 노 대통령의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셈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를 `노 대통령의 규범주의'라고 설명하고 있다. `스스로 만든 규범은 스스로 따르는 것이 맞다'는게 이번 논란 과정에서 노 대통령이 견지해온원칙이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과 의중이 외부에 비쳐지면 정치적으로 해석될 소지가 다분하며 이는 결국 (경찰청장 2년 임기제라는) 법.제도의 혼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청와대 다른 관계자는 "경찰청장이 공권력 과잉행사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만큼폭력시위 원인을 제공한 쪽에서도 입장표명이 필요한 게 아니냐"고 말했다.
한편 청와대는 허 전 청장 후임 인선을 놓고 금주내 마무리한다는 방침 아래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현행 법에 후임 경찰청장은 치안정감에서 기용토록 돼있어 치안정감인 최광식(崔光植) 경찰청 차장, 강영규(姜永圭) 경찰대학장, 이택순(李宅淳) 경기청장 등 3명이 후보로 올라있다.
하지만 "경찰청장 후임 인선 방정식을 풀기가 쉽지 않다"는 한 관계자의 말처럼청와대는 `3명의 후보 가운데 누가 후임 경찰청장으로 적합할지'에 대한 답을 좀처럼 내놓지 못하고 있다.
현재 청와대는 검.경 수사권 조정, 경찰공무원법 후속 입법 등 주요 정책현안을무리없이 마무리하고 저하된 경찰의 사기를 끌어올릴 수 있는 경찰 총수를 찾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동시에 청와대는 경찰 내부의 지역 안배, 권력기관장 간의 지역안배 문제, 경찰내부의 역학 관계 및 여론 등도 고려 요인으로서 다각적인 검토를 진행중인 것으로알려졌다.
이와 함께 청와대는 `적재적소 및 지역 안배'라는 인사원칙 외에도 또다른 정무적 판단도 하고 있어 보인다.
허 전 청장의 사퇴에 대해 `15만 경찰이 영웅을 잃었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즉각적인 후임 인선 발표는 마치 청와대가 허 전 청장의 사퇴를 기다렸었다는 것으로도 해석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