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영화 '유브 갓 메일'

양정록 <생활산업부장>

뉴욕의 명물 ‘길모퉁이 서점’은 수십년째 이어져 내려온 아동서적을 파는 작은 책방이다. 어느날 길 건너편에 대형 체인 서점이 들어서면서 이 책방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한다. 사연을 전해 들은 뉴욕 시민들은 대형 서점을 비난하는 방송을 내보내기도 하고 추억의 서점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불러모아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이러면서 그들은 “대형 서점 때문에 고사 위기에 처한 ‘길모퉁이 서점’을 살리자”고 외쳤다. 하지만 결국 ‘길모퉁이 서점’은 고객의 발길이 끊기는 등 적자를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고 만다. 지난 98년 12월31일 개봉한 영화 ‘유브 갓 메일’(You`ve Got Mail) 줄거리다. 대형 할인점, 영세 유통업 위협 원제 '유브 갓 메일'은 미국 최대의 PC 통신사인 AOL(아메리칸 온라인)에 처음 접속할 때 나오는 음성 메시지로 ‘당신 앞으로 메일이 왔다’는 뜻이어서 자칫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단순히 인터넷을 통한 남자와 여자의 사랑 이야기로 기억하기 쉽다. 하지만 이는 세계화에 맞서 싸우는 뉴욕 지역 시민들의 이야기다. 영화에서 벌어진 이 같은 일들이 이제 한국에서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일상이 되고 있다. 깔끔한 매장, 저렴한 가격, 첨단 마케팅 기법 등으로 무장한 대형 할인매장이나 기업형 편의점들이 대거 들어서면서 동네 어귀의 정겨운 구멍가게와 재래시장 점포들이 하나둘씩 고사되고 있다. 실제 대한상의 자료에 따르면 96년 유통시장 개방 이후 지난해 말까지 대형 할인점의 판매액은 779.6%, 편의점은 197.2% 늘어난 반면 슈퍼마켓은 19.4%, 구멍가게 등 기타 소매업은 12% 각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사정이 이러한데 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백화점ㆍ할인점 등 대형 유통점의 점포신설 제한조치를 크게 완화하는 방안을 정부가 추진하고 있어 슈퍼마켓ㆍ재래시장 등 중소 유통상인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최근 산업자원부와 관련업체에 따르면 산자부는 대형 유통점의 점포신설을 위해 필요한 토지매입 등을 지자체에 위탁 수행할 수 있게 하는 등 점포신설을 완화하는 내용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당초 6일 입법예고할 예정이었나 중소상인들의 반대로 지금은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최근 4만여명의 중소 유통업 상인들이 소속된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중앙회와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등은 정부에 규제완화 조치에 반대하는 내용의 건의서를 제출하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입법예고를 미루고 있는 셈이다. 만약 개정안이 통과되면 대형 유통점포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날 것으로 보여 중소상인들의 반발이 극에 이를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최근 할인점업계 1위인 신세계 이마트가 인구 5만명에 불과한 태백시에 점포설립을 추진하다가 지역상인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쳐 주춤하고 있는 것이 좋은 예다. 특히 이마트는 태백뿐만 아니라 서귀포ㆍ춘천 등에서도 입점과 관련해 중소상인이 반발, 진퇴양난에 빠져 이마트가 내세운 ‘윤리경영’과 동떨어졌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게다가 규제완화 이전에도 중소 유통업은 대형 할인점의 진출, 소비위축 등으로 침체를 겪어왔다는 게 중소상인들의 일관된 입장이고 보면 이마트의 이 같은 행위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입점 제한등 보호책 마련해야 가뜩이나 상황이 이러한데 규제가 완화되면 대형 할인점의 출점이 가속화돼 중소상인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것은 물론 지역경제의 근간인 영세 유통업의 몰락을 초래하게 된다고 중소상인들이 주장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정부가 올해 최대 국정목표를 재래시장 및 소규모 자영업의 활성화에 두겠다고 발표해 반가움을 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자체에서 조례를 제정해서라도 대형업체의 입점을 제한해야 하는 등 단기적으로 영세 유통업자들을 보호하는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밝힌다. 그러나 유통업체의 대형화는 세계적 추세인 만큼 장기적으로는 중소상인 스스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않다. 서로 힘을 모아 대형 마트를 운영하거나 유기농 매장, 신선식품 전문매장 등으로 차별화해야 하고 특화된 제품과 서비스로 무장해 스스로 살 길을 모색하고 있는 미국의 중소 상인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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