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가장 객관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과학도 언어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 다르고 「어」 다른 언어는 때때로 과학을 뒤흔든다.유전자를 연구대상으로 삼는 과학자들이 처음엔 「재조합」이라고 불렀다가 「조작」, 「변형」 등으로 자주 말을 바꾸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는 과학이 대중에 눈치보고, 상업성에 영합한 결과다.
「잘 문드러지지 않는 토마토」 같은 유전자 변형 식품이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이를 「유전자 재조합」 식품이라고 불렀다. 과학자들이 쓰던 「재조합」(RECOMBINATION)이란 말을 그대로 옮겨 쓴 것이다. 이 말은 3~4년 전까지 신문·방송에서 자주 사용됐다.
「재조합」이란 말은 과학적이었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너무 어려웠다. 이때 나온 말이 「유전자 조작」이다. 유전자를 조작해서 만들었다는 뜻이다. 이 말은 아직까지도 가끔 사용되고 있다.
「유전자 조작」도 도전을 받았다. 말의 느낌 때문이다. 유전자 조작은 무언가 나쁜 것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특히 유전자 조작 식품을 파는 기업들로서 이러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치명적이었다. 「재조합」이란 말을 바꾼 것이 대중성을 의식해서였다면, 「조작」이란 말을 바꾼 것은 상업성 때문이었다.
최근 유전과학자들이 새로운 대안으로 찾아낸 말이 「유전자 변형」이다. 「조작」에 비해 「변형」(MODIFICATION)이란 말은 어느 정도 중립적인 느낌을 준다. 물론, 말을 바꿨다고 해서 유전자 변형 식품의 안전성이 높아진 것은 결코 아니다.
「변형」이란 말은 얼마나 오래 사용될까. 그렇게 길지 못할 것 같다. 식품 회사들은 좀 더 느낌이 좋은 말을 찾고 있다. 유전자 변형 식품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들의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다. 어쩌면 앞으로는 「변형」이라는 말대신 「유전자 개선 식품」같은 말이 사용될지도 모른다.【김상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