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통합도산법 제정 7년…법정관리 어떻게 달라졌나

법원 심판자→중재자 변신 이후 기업회생 길 넓어져

올 들어 서울중앙지법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한 기업은 모두 111곳이다. 1년의 절반이 채 지나기도 전에 지난 2008년 연간 신청건수(110건)를 넘어섰다. 신청이 들어오는 속도도 지난해보다 빨라졌다. 이대로라면 올해 기업회생신청 규모는 지난해 신청 건수(268건)를 훌쩍 뛰어넘어 신기록을 세울 것이라는 게 법원의 관측이다.


기업회생절차 신청이 늘어난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경기불황이다. 법정관리를 택한 기업 가운데 유독 건설ㆍ해운업체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세계적으로 진행된 부동산ㆍ해운업 불황에 타격을 입은 경우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기업회생 신청 기업이 해마다 늘어만 가는 이유를 모두 경기 악화의 탓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 많은 전문가들은 법원과 기업회생절차의 변화에서 또 다른 원인을 찾고 있다.

과거 회사정리법 체계에서 ‘법정관리가 시작된다’는 말은 기업인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법원의 역할은 기존 경영진에 실패의 책임을 엄하게 묻는 ‘심판자’였다. 법원은 회사 외부에서 관리인을 선임해 기존 경영진의 개입을 차단했고 대주주의 주식을 소각해 지배력을 약화시켰다. 때문에 법정관리에 대한 기업의 선호도는 극히 낮았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에 재임했던 서경환 부장판사는 “관리인이 선임되면 가장 먼저 법정관리 기업의 기존 경영권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제압해야 효과적일 것일까에 대해 논의했다”며 “기업 입장에서 법원과 관리인은 ‘점령군’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하지만 2006년 통합도산법이 제정되면서부터 ‘법정관리=사형선고’라는 등식은 사라져 가고 있다. 특히 기업 재정 파탄의 원인이 기존 경영자의 재산 유용 등 중대한 책임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기존 경영자를 관리인으로 선임하도록 한 ‘기존 관리인 유지(DIPㆍDebtor In Possession)’ 제도의 도입은 기업이 법정관리에 가졌던 부정적 인식을 크게 바꿔놨다.

지난 2011년 법원이 도입한 패스트트랙(fast track) 제도도 기업이 법정관리를 구조조정 절차의 하나로 선택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줬다. 패스트트랙은 1년 이상 걸리던 채무 조정절차를 최장 6개월로 단축시켰다. 또 기존 회생절차에서는 종결까지 최소 10년을 법원의 관리 아래 놓이게 했지만 패스트트랙은 1회만 채무를 변제하면 법정관리 기업의 꼬리표를 뗄 수 있게 했다.


물론 바뀐 기업회생 절차가 긍정적인 결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기업 회생에 방점을 두다 보니 법원이 채권자들보다 기업의 편에 치우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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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문제가 된 것은 기존 관리인 유지 제도다.

법정관리는 워크아웃 등과 달리 금융권 채무뿐만 아니라 회사채, 상거래채권 등의 비금융권 채무까지 모두 동결된다. 물품 대금을 지급받지 못한 하청ㆍ협력업체, 회사채를 매입한 다른 기업이나 개인투자자 모두가 연쇄적 피해를 입기 마련이다. 그러나 DIP제도 아래에서 기존 경영자들은 과거와 달리 실패의 책임을 지지 않았다.

일례로 웅진홀딩스는 지난해 법정관리를 신청하며 ‘회사 사정을 가장 잘 알고 빠른 회생을 도울 수 있는 것은 기존 경영진뿐’ 이라는 입장을 내세워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을 관리인 후보로 추천했다. 웅진홀딩스와 계열사 극동건설이 시장에 끼친 피해는 하청업체 1,200곳에 대한 3,000억원 상당의 채무, 회사채 1조원 등에 달했지만 이를 초래한 윤 회장이 경영권을 유지하겠다며 나선 셈이다.

양날의 검이 된 DIP 제도를 손질하기 위해 법원이 도입한 제도는 ‘채권자협의회의 감독을 받는 기존 경영자 관리인 제도였다. 법원은 회생절차와 관련된 구조조정 업무를 채권자협의회가 추천하는 기업구조조정임원(CRO)이 주도할 수 있도록 했다. 자금관리위원도 채권자협의회에서 파견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법원의 역할도 달라졌다.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대신 한 발 물러선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인 영업활동에서는 법원의 허락을 받는 대신 채권단과의 협의 후 사후보고를 하는 방식도 허용했다.

시장 반응은 꽤 고무적이다. 한병준 중소기업은행 기업회생팀장은 “연간 1,500여건의 회생신청이 법원에 들어오는 상황에서 채권단이 협의회를 구성하더라도 인력부족 등으로 감시ㆍ감독이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었다”며 “관리인에 채권단이 추천하는 CRO가 선임되면서 법정관리 절차에 대한 신뢰가 높아졌고 업무 부담이 한층 줄었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법정관리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거듭하고 있는 법원이지만 아직도 풀어내야 할 과제는 남아있다. 급선무는 법정관리 종결률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지금처럼 법정관리에 들어간 기업 10곳 중 9개가 시장에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법정관리가 ‘기업들의 무덤’이라는 꼬리표를 떼낼 수가 없다.

한 팀장은 “기업이 구조조정 절차를 통해 살아나는 것이야 말로 채권자, 기업, 법원 모두가 바라는 결과일 것”이라며 “기업워크아웃 제도의 정상화율이 60%이고 법원 회생절차는 10%에 그치는 상황이라 기업의 법정관리 신청은 꺼려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지난 3월부터 중소기업청과 협력해 실시하고 있는 중소기업 회생컨설팅이 이 같은 문제의 해법을 모색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법원 파산부 관계자는 “중소기업이야 말로 회생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취약한 재정능력 탓에 적절한 시기를 놓치는 등으로 회생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며 “컨설팅을 통해 여러 구조조정 절차 가운데 가장 적절한 방법을 택해 조기에 도움을 받으면 일시적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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