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잔인하고 불편하다?’ 언젠가부터 영화팬들 사이에선 이런 선입견이 자연스럽게 자리잡아 버린 듯 하다. 게다가 김기덕 감독에 대한 영화 외적인 여러 사건이 함께 일어나면서 이런 인식은 더 굳어져 버렸다. 분명히 그의 초기작인 ‘악어’, ‘수취인 불명’, ‘섬’ 등의 영화는 특유의 강렬한 색감과 충격적인 화면 등으로 관객에게 불편함을 주는 면이 분명히 존재했다. 그러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이후 세계적으로 호평 받았던 영화들인 ‘사마리아’, ‘빈집’, ‘시간’ 등의 영화는 이들과 다르다. 어느때인가부터 김기덕 감독은 강렬한 자기발산 대신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를 영화 속에 담게 된 것. 때문에 그의 최근작을 보게 되면 불편함 보다는 오히려 따뜻함의 정서가 느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는 많은 관심 끝에 지난 30일 공개된 영화 ‘숨’도 마찬가지. 한 사형수와 가정주부의 기묘한 사랑을 통해 사람들간의 화해와 용서의 메시지를 보여주는 이 영화는 적은 대사와 많은 상징 덕분에 어려워 보일 수는 있을지언정 불편하지는 않다. 스토리 진행상 반드시 필요한 일부 잔인한 장면 조차 관객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 수준으로 부드럽게 표현할 정도. 영화의 주인공은 사형집행이 불과 한달 밖에 남지 않은 사형수 장진(장첸). 가족을 살해하고 감옥에서 절망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그는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하고 송곳으로 자신의 목을 찔러 자살을 시도한다. 하지만 그의 이런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고 그는 결국 다시 자신을 가두는 감옥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한편, 가정주부 연(박지아)은 장진이 등장하는 TV뉴스를 보고 묘한 끌림을 느낀다. 남편(하정우)의 외도를 알고 나서부터 남편과 점점 멀어져 가던 연. 결국 그 끌림을 따라 장진을 만나기 위해 교도소를 찾는다. 그곳에서 만난 장진에게 연은 자신의 어린시절의 가슴 아팠던 순간들을 하나씩 털어놓고, 그에게 삶의 희망을 주기 위해 사계절의 이미지가 담긴 공연을 직접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두 사람에게 어떤 감정이 싹트기 시작한다. 영화는 서대문 형무소와 경기도 파주시 헤이리 부근에서 3억 7,000만 원 규모로 촬영됐다. 한국영화의 평균 제작비가 40억원이 넘어가는 현실을 생각한다면 놀랄 만큼 초저예산이다. 하지만 적은 예산으로 최단기간에 영화를 찍는 김기덕 감독 특유의 스타일은 그의 영화에 단점보다는 장점으로 기능한다. 짧은 기간의 촬영이 영화에 엄청난 집중력과 일관성을 부여해 주는 것. 단 9회의 촬영만으로 한편의 영화를 완성한 이번 작품에서도 이런 장점은 잘 드러난다. 영화의 궁극적 주제를 위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가는 이번 영화도 군더더기 없이 강력한 흡인력을 가졌다. 허우샤오시엔의 영화 ‘쓰리 타임즈’등으로 잘 알려진 대만배우 장첸은 대사 한마디 없이 몸과 표정만으로 고뇌를 표현해야 하는 연기를 완벽하게 해낸다. 역시 세계적 명성이 아깝지 않다. 박지아와 하정우 등 다른 배우들도 쉽지 않은 내면연기를 훌륭하게 수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