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이탈리아로 향하는 비행기안에서 김기석 사장은 어깨가 무거웠다. 신사업팀장이라는 직책을 맡아 로만손의 새로운 먹을거리를 발굴하는 일이 그에게 달려 있었다. 신사업분야는 주얼리. 이탈리아의 왕가를 브랜드 아이덴티티로 잡고 '제이에스티나'라는 브랜드를 론칭하기 위해 그는 한 달에도 수 차례 이탈리아를 오가야 했다. 부담은 컸지만 김 사장은 한편으로 즐거웠다. 도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새롭게 도전할 때가 가장 즐겁다'고 말하는 그다. 변화를 감지하고 대응하는 데도 익숙하다. 하지만 제이에스티나의 론칭 과정은 그리 쉽지 않았다. 이탈리아 왕가의 생활상을 속속들이 알기 위해 역사책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이탈리아 디자이너들에게 콘셉트를 전달하며 2년을 준비했다. "론칭 당시 국내 주얼리 시장은 예물용 고가 시장과 저가 제품 시장으로 양분돼 있었어요. 디자인을 강화한 중간 가격대의 브랜드를 들고 나서자 업계에서 심지어 '미친 놈' 소리도 들었습니다." 7년이 지난 현재 제이에스티나는 액세서리 업계에서 부동의 1위다. 그가 주도한 첫번째 도전은 지금도 성공의 역사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로만손은 1988년 김 사장의 친형인 김기문 회장이 설립한 회사다. 당시 1,000억원의 매출이 넘는 쟁쟁한 시계업체가 앞서 버티는 가운데 후발주자였던 로만손은 해외로 눈을 돌렸다. 해외전시회에 출품하고 디자인과 기술을 개선했다. 결국 '주문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해외에서 성공을 거둔 후 다시 국내시장으로 금의환향했다. 김 사장은 창업 첫해 입사한 후 로만손의 성공가도의 한가운데서 형님의 열정과 개척정신을 옆에서 지켜봤다. 그는 "중요한 순간에는 '내가 결정권자라면 이렇게 해보겠다'는 일종의 시뮬레이션을 했다"며 "항상 제 의지를 담아서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고 싶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런 그에게 주어진 기회가 바로 2003년 정체된 시계사업의 대안으로 추진한 제이에스티나였다. 그리고는 곧 더 큰 기회가 찾아왔다. 2004년 최고경영자(CEO)로 정식 취임한 것. 그는 "취임을 하니 남들은 부담스럽지 않냐고 하는데 오히려 설레고 기뻤다"며 "내 의지와 구상을 가지고 결정하고 만들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취임과 동시에 평소 구상했던 로만손의 모습을 그린 '로만손의 비전'을 회사 벽에 적어 붙였다. '2015년 3,000억원 매출, 글로벌 패션기업으로 도약'이 바로 그것이다. 직원들은 과연 할 수 있겠느냐며 못미더워했다. 그러나 한해 한해 매출은 늘어가고 계획에 정확히 맞아떨어져 갔다. 3,000억원 매출은 목표인 2015년보다 더 앞당겨질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 사업계획이 맞아떨어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김 사장은 보통의 회사들이 4ㆍ4분기에 세우는 이듬해 사업계획을 1ㆍ4분기가 끝난 후 짠다. 2ㆍ4분기와 3ㆍ4분기, 4ㆍ4분기는 계획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세우고 점검하며 변수를 줄이는 데 쓰인다. 김 사장이 도전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미리 그만큼 많이 준비하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준비한 만큼 도전에 여유가 생기는 것"이라며 "직원들 역시 한해 두해 목표가 이뤄지니까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단순한 사전 준비뿐만이 아니다. 후속조치도 빠지지 않는다. 제이에스티나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서일까. 김 사장은 제이에스티나 브랜드가 론칭한 지 7년이 지난 지금도 주말마다 어김없이 매장을 찾는다. 직원들 없이 혼자 가서 2~3시간씩 매장 인테리어가 아쉬운 점은 없는지, 고객들의 반응은 어떤지, 직원들의 서비스는 적절한지 몰래 살피고 있다. 사실 이 같은 지치지 않는 꾸준함은 일찍이 몸에 뱄다. 그의 집은 농촌에서 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지만 아버지는 모든 자식들에게 신문배달을 시켰다. 김 회장도 했다고 한다. 다만 김 사장은 몇 달만 경험했던 형ㆍ누나들과 달리 7년을 했다. 태풍이 불거나 폭설이 내려도 매일 새벽에 일어나 신문을 돌리는 일이 7년 동안 이어진 것. 아버지는 아홉 살짜리 김기석이 중2가 돼서야 신문 돌리기를 그만 두게 했다. 그는 "지금도 왜 그렇게 오래 시켰는지는 모르겠다"고 웃으며 "확실한 것은 그 일을 계기로 시작한 일은 꾸준히 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몸으로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가장 큰 유산인 셈이다. 김 사장은 지금 60세까지의 경영계획ㆍ활동계획을 다 세워놓았다고 한다. 그는 "건강과 체력이 허락하는 한 새로운 도전을 즐기고 싶다"고 전했다. 그가 60세까지 이루고 싶은 회사의 모습은 무엇일까. 그는 "1조원 매출에 글로벌 각 도시에 단독매장을 낼 수 있는, 그리고 누구나 알고 있는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진출은 이미 시작됐다. 김 사장은 내년 초 세계 패션1번지 뉴욕에 제이에스티나 단독매장을 오픈할 예정이다. 7년 전 이탈리아 왕가를 공부할 때처럼 다시 뉴욕의 트렌드를 익히고 현지에 적합한 마케팅 방법을 찾아야 한다. 김 사장은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어깨는 무겁지만 그는 여전히 도전할 수 있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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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성·시장규모 커 내년부터 본격 진출 김기석 로만손 사장이 요즘 뉴욕 진출과 함께 가장 큰 공을 들이고 있는 분야는 '제이에스티나 핸드백(J.ESTINA BAGs)'이다. 김 사장은 '제이에스티나 백스'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우기 위해 기획단계부터 이탈리아 디자이너와 함께 작업을 진행하고 최고급 소재를 선정하는 등 갖은 정성을 쏟고 있다. 제품구색도 40만원대의 중가제품부터 고가의 명품 핸드백까지 총 40여종으로 다양하게 갖췄다. 김 사장은 "현재 롯데백화점 대구점과 천안 갤러리아타임월드 등의 토털숍 매장에서 테스트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며 "내년 상반기부터 백화점 단독매장을 오픈해 본격적으로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미 테스트 마케팅 과정에서도 월평균 2억원가량의 매출이 발생한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그가 2년여의 준비기간에 이어 1년 넘게 테스트 매장까지 운영할 정도로 공을 들이는 것은 핸드백 시장의 성장성이나 규모에 대한 기대감이 크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국내에서 주얼리 1위 브랜드의 연매출이 700억~800억원인 데 반해 핸드백 1위 브랜드는 1,800억원 수준으로 두배가 넘는다"며 "핸드백 시장 공략에 성공한다면 자연스럽게 매출의 급성장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로만손은 일단 백화점을 중심으로 내수시장에 첫선을 보인 후 내년 중 뉴욕에 오픈할 제이에스티나 단독매장에서도 제이에스티나 백스를 판매할 계획이다. 김 사장은 "제이에스티나 주얼리를 통해 주얼리 산업의 잠재력을 충분히 증명했다"며 "제이에스티나 백스 역시 패션업체에서도 1조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겠다"고 자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