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20년 불황' 일본 전철 안 밟으려면


우리 경제가 일본이 겪었던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장기침체의 길을 답습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거시경제 면에서 물가안정은 이뤄냈지만 성장침체, 정부와 가계 부채 증가 등의 문제가 가중되고 있어 일본 경제의 장기침체 진입단계와 비슷하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기업 담대한 투자로 신성장동력 창출


그러나 산업발전 측면에서는 아직도 일본이 우리나라의 벤치마킹 대상이다. 비록 일본의 많은 주력산업이 한국과 중국의 추격을 버거워하기 시작했지만 우리나라가 아직도 취약하게 느끼는 부품소재 산업, 뿌리산업 등에서 탄탄한 경쟁력을 쌓아왔다. 독일의 히든챔피언들에 비견되는 세계적 경쟁력을 자랑하는 수많은 일본 강소기업들이 한국·중국의 주력산업들의 제품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는 핵심적 중간재를 공급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당연히 우리나라도 이들 기반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산업정책적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일본의 지난 20년을 거시경제 운영에서는 실패했고 산업발전이라는 미시적 산업정책에서는 성공한 모델로 치부해도 되는 것일까.


일본의 산업발전 방식은 한 마디로 '가이젠'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즉 지금까지 일본 산업들이 닦아온 경쟁력 향상 방식에 대한 깊은 신뢰감을 바탕으로 여기에 조금씩 새로운 발전요소를 불어넣는 점진적 개선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일본은 이제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제품을 내놓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1980년대 소니의 워크맨, 1990년대 닌텐도 게임기 등을 끝으로 일본은 더 이상 세계의 소비자들을 매혹시키는 신제품을 시장에 내놓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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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우리나라가 일본의 경험을 계속 따라갈 것인가다. 산업기반 기술 개선이라는 측면에서는 아직 할 일이 많고 이 분야에서의 한국형 히든챔피언들을 길러내는 일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일본식 점진적 개선 방식은 계속 추진해나가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라는 무서운 경쟁자가 우리 산업의 등 뒤에서 추격 속도를 높이고 있는 상황에서는 우리나라 산업들이 이러한 점진적 개선의 틀에만 묶여 있어서는 곤란하다.

여기서 창조경제의 필요성이 등장한다. 창조적 혁신, 즉 담대한 투자, 빠른 취사선택 그리고 세상의 트렌드를 읽어내는 능력을 무기로 신성장산업을 일궈내는 일에 나서야 한다. 산업전선에서 이러한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일은 물론 기업들의 몫이다. 대기업·중견기업·중소기업 그리고 창업기업에 이르기까지 혁신적 마인드로 새로운 제품과 공정을 만들어내려는 대열에 나서야 한다. 여기서 정부가 해야 할 첫 번째 중요한 산업정책적 태스크가 대두된다. 즉 이들 기업이 새로운 분야에 대한 투자를 가로막는 각종 장벽을 제거하는 일에 정부가 역할을 해야 한다. 과거의 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낡은 규제를 개혁하고 기존 이해관계자들과의 사회적 갈등을 정부가 해소해줘야 할 것이다. 모든 형태의 기업들이 역량을 결집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일도 정부 몫이 돼야 함은 물론이다.

정부 규제완화·갈등해소 앞장을

더 나아가 산업정책 자체에도 창조적 마인드가 도입되기를 기대한다. 즉 기존 방식의 유효성, 기존 산업들의 미래생존 가능성에 대해 진지한 반성과 검토를 진행하고 새로운 미래 트렌드를 읽어내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산업정책 자체에서도 창의성과 상상력이 발휘돼야 우리 기업들이 창조적 파괴로 나아가도록 도와줄 수 있는 정책적 역량이 형성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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