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벼랑 끝에 선 자동차 부품업계

“현대ㆍ기아차의 중장기 사업계획이 중단되면서 협력업체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 기관들은 이를 엄살 정도로 치부하고 있으니 답답할 뿐입니다.” 현대ㆍ기아차그룹의 1차 부품업체를 운영 중인 한 중견기업 대표는 최근 기자와 만나 이렇게 하소연했다. 현대ㆍ기아차의 해외 생산기지 확충 계획을 바라보고 현지 동반진출을 위해 금융권을 통한 재원조달까지 마친 상태인데 정몽구 회장의 구속수사 여파로 해당 사업이 올스톱되면서 곤경에 빠졌다는 것이다. 그나마 이 기업은 아직 재원을 쓰지는 않았으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이미 현대차의 앨라배마 공장 인근에 생산기지를 지은 협력사들은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은 마당에 수요처인 현대차가 휘청거리자 극도의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이들 기업은 모두 12곳으로 국내 부품업계에선 내로라하는 우량기업들이다. 이러다 보니 이보다 훨씬 규모가 작은 2ㆍ3차 업체들의 고충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현대ㆍ기아차그룹의 협력사 중 비교적 규모가 있는 기업은 1차 공급업체 400곳과 2차 공급업체 3,500여개 등 4,000개에 육박한다. 이들 중에는 국내 자동차제조사뿐 아니라 GM이나 BMW와 같은 해외 유력 자동차회사로부터 러브콜을 받을 정도로 높은 기술ㆍ가격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그동안 환율ㆍ유가ㆍ원자재가 불안은 물론 장기 경기침체 속에서도 묵묵히 허리띠를 졸라매며 피땀을 흘려온 결과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이 한 순간에 수포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과거 후진국 시절이야 해외 기업들로부터 어렵지 않게 기술전수를 받을 수 있었지만 이제 한국은 유수한 글로벌기업들로부터 견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최근 현대ㆍ기아차 협력업체들의 대표 역할을 맡고 있는 한 부품업체 회장도 “현재의 부품업체들이 넘어지면 더 이상 어디 가서 기술을 배워올 수도 없다”며 한숨을 늘어놓았다. 협력업체들의 위기감은 이미 임계점을 넘어서기 직전이다. 11일 협력업체들은 모여 긴급 기자회견을 갖는다고 한다. 생존의 어려움을 하소연하려는 이들의 외침을 ‘엄살’로 치부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한국 자동차산업 반세기의 명운이 지금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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