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인들은 기업에 투자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지난해 외국인투자가 초청 강연회에서 한 외국인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정말 모르겠다는 듯이 한 말이다. 그 이후 한해가 훌쩍 지났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 증시에서 한국인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IMF를 거치고 지난 98년 외국인이 국내 증시에 등장한 이래 개인은 18조원, 기관은 32조원의 기업지분을 외국인에게 넘겼다.
반면 한국 기업은 IMF 이전에 비해 순이익이 무려 10배 이상 증가했다. 80년대부터 IMF 직전까지 평균 2조원을 벌어들이던 한국 기업은 지난해에는 30조원을 벌어들일 만큼 성장했다.
요즘 증시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부분은 경기는 둔화되고 있다고 하는데 외국인은 국내 주식을 사 모으고 있다는 점이다. IMF 이후에 등장한 외국인이 국내 자본시장에서 머니게임을 조장했다고 비난받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기업 투자를 꺼려왔던 한국인으로서는 요즘 더욱 경계의 눈초리로 증시를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앞서 제시한 관점에서 보면 10배 성장한 한국 기업에 투자하는 외국인보다 증시를 외면하고 있는 내국인이 더욱 이상한 것은 아닐까.
외국인이 단기적으로 불리한 글로벌 경제 환경에도 불구하고 한국 증시를 팔지 않는 배경에는 국내 기업의 수익창출 능력의 개선과 그 지속력 때문일 것이다. IMF 이후 부채 줄이기를 통해 국내 기업은 체질적으로는 매우 가벼워졌으며 교역을 세계시장으로 확대하면서 이익의 규모도 월등이 커졌다.
96년도부터 2001년 결산기까지 기업들은 혹독한 체질 개선을 통해 대부분의 부실을 떨어내면서 지난해에는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릴 수 있었다. 국내외 애널리스트는 올해 및 내년 기업 이익 추정치를 낮추고 있는 추세지만 국내 증시에서 기여도가 높은 상위 10개 기업의 추정 EPS를 평균해보면 올해는 지난해보다 7%, 내년에는 8%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기업은 시련기를 통해 단련됐고 장기적 관점에서는 지금부터 의미 있는 수익을 내고 있다. 우리보다 자본시장이 일찍 개방된 일본이나 타이완의 경우 외국인 지분이 30%도 되지 않는다. 외국 자본이 국내 기업을 성장하게 한 거름이 됐음을 부인할 수 없지만 기업들이 시련기를 견뎌내고 과실이 열리고 있는 지금 한국 증시에 한국인이 없다는 점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