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남북관계 현실과 대응

류길재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

류길재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

만일 북한이 아프리카 어디쯤에 있는 나라라면 우리는 북한을 어떤 시각으로 볼까. 아마도 예전에 독재권력에 휘둘렸던 우간다나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정도로 치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 북한을 그런 나라와 유사하다고 말하면 ‘보수 반동’이 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용천 사건이 발생한 지도 벌써 한 달이 가까워 오지만 그 정확한 실상도 모르고 북녘 동포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충분히 헤아리지도 못한다. 북한의 언론 매체들이 제대로 보도하지도 않고 있거니와 기대하지도 않는다. 6자회담 기대반 우려반
그러나 사고가 난 후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일치단결해 용천돕기운동을 벌였다. 그 후 개최된 14차 장관급회담에서 북은 군사회담을 열자는 남측의 요구를 거부하다 막판에 가서야 수용했다. 물론 회담이 열려야 열리나 보다 하겠지만 언론에서는 벌써부터 한반도 긴장완화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섞인 전망을 하고 있다. 북한 핵문제가 아직 해결의 실마리도 찾지 못한 채 기대 반 우려 반의 심정으로 베이징에서 열리는 6자 실무회담을 바라보고 있다. 미국과 북한의 입장 전환 없이는 해법이 나올 수 없는 것이 핵문제이다. 전문가들조차 뾰족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북한이 잘못했느니 미국이 잘못했느니 하는 책임론만 제시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한국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란만 지루하게 계속되고 있을 뿐이다. 우리 사회는 북한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이나 남북관계를 단번에 바꿀 수 있는 듯 ‘덤비거나’ 집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용천에서 갑작스러운 사고가 발생하자 온 사회가 예의 그 ‘냄비근성’을 보여주고 있다. 또 장성급회담 개최가 합의되자 한반도 평화가 목전에 온 듯이 희망사항을 내비치고 한국의 역할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핵문제에서는 ‘중재자’의 직분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는 자화자찬이 난무하는 것 등이 바로 집착의 모습이다. 대북 인도적 지원을 담당하는 시민단체에 따르면 용천돕기모금운동은 금세 시들해졌다고 한다. 이번 사건은 갑자기 벌어진 일이므로 대대적인 구호운동이 필요하다. 북한의 경제사정이 조금 좋아졌다고는 하나 겨우 아사를 면할 정도다. 따라서 대북 인도적 지원은 평소에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 오히려 이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정부는 좀더 냉정하게 대처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혹시나 우리가 거국적으로 도와주면 북한이 고마워서라도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기대했다면 이는 북한을 몰라도 한참 모른다는 얘기다. 더욱이 용천 사고가 북한 개혁개방의 계기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는 견해도 제기됐다. 북한은 지난 반세기 동안 폐쇄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체제를 고착시켜왔다. 이는 곧 남한에 대한 인식과 남한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를 굳힌 과정이기도 하다. 북한에 남한은 미국의 ‘식민지’여야 한다. 비록 지금은 북한이 경제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이 ‘식민지’로부터 경제지원을 받지만 이는 일시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북한이 내세우는 민족공조 논리도 따지고 보면 이런 지원을 정당화하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냉철한 접근자세 필요
우리의 목표는 당장 핵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에 평화를 안착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 북한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는 없다. 미국이나 주변국들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남북관계를 크게 변화시키겠다는 생각이나 북한의 움직임에 대해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고 냉철하게 접근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다행스럽게도 남북관계는 정상회담 이후 공식적인 접촉 창구가 유지되고 있고 북한이 남한의 경제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는 만큼 관계 개선의 모멘텀을 유지하면서 점진적으로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남북관계는 급격한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러므로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의 현실 속에 존재하는 남북관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이러한 방향으로 합의를 이뤄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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