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는 간단하다. 은행신탁을 둘러싼 규정 및 주변환경이 변했다. 무엇보다 지난해 투신권에 가려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은행신탁 살리기 정책이 3월을 시작으로 실효를 나타내기 시작한다.금리도 오르곡선을 타기 시작했다. 지난해말 막대한 대손충당금을 적립, 클린화에 성공한 탓이다. 상품종류도 다양해져 「신상품 전시장」으로 변하고 있다. 은행의 자산운용전략이 그만큼 다양해졌다는 얘기다.
◇1년 넘게 계속된 「고통의 세월」= 99년 한해 은행신탁은 한마디로 「고통의 시절」을 보냈다. 98년말 154조3,138억원이었던 은행의 신탁계정 총수신은 99년말에는 118조4,270억원까지 급감했다. 은행신탁은 그러나 이같은 끝없는 예금이탈 속에서도 비상구를 찾지 못했다. 정부 당국이 대우사태에 따른 투신권의 환매에 정책의 중심을 두는 바람에 은행신탁의 부활에는 신경을 쓸 겨를 조차 없었기 때문. 지난해 4월 신규로 허용한 단위형신탁외에는 대중앞에 내놓은 전시상품 하나 갖추지 못했다. 그나마 단위형신탁도 주식운용비율을 30% 이내로 억제, 직접시장의 활성화에 편승한 증권사의 간접투자상품과는 경쟁이 되지 않았다.
여기에 환란이후 고객들의 안정성 위주 투자패턴이 대우사태를 고비로 정형화되면서 은행신탁도 동반해 인기를 잃었다. 기업부분의 부실은 신탁계정에 막대한 충당금 적립요인을 만들면서 배당률까지 형편없게 만들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신탁이 정기예금에 비해 경쟁력을 갖추려면 최소 2%포인트이상 금리가 높아야 하는데 지난해는 1% 안팎의 편차 속에서 수평곡선을 그렸다』며 『신탁고객들이 이탈한 것은 당연한 현상이었다』고 해석했다.
은행신탁의 주요품목이었던 개발신탁도 98년말 이후 신규판매가 금지되면서 이탈현상을 부채질했다.
◇비상구는 찾았다= 신탁상품의 경쟁력을 위한 양대 핵심은 「금리」와 「신상품 개발」이다. 이런 측면에서 은행신탁은 최소한 주변여건에서만은 충분한 경쟁요소를 되찾게 됐다. 우선 금리. 국내 시중은행들은 지난해 사상 유례없는 충당금을 쌓았다. 덕분에 오랜기간 옥죄던 대우 및 워크아웃 채권에대한 충당압박에서 벗어났다. 고객들의 투자성향에서 핵심요소중 하나인 운용자산의 부실위험에서 벗어난 것이다. 덕분에 신탁상품의 배당률은 새해들어 0.5%포인트에서 최고 2%포인트까지 상승했다.
신탁의 활성화를 엿볼수 있는 또다른 단초중 하나가 신상품 개발 허용. 정부는 이미 은행권의 오랜 소망이었던 수탁기간의 만기를 상당부분 완화해줬다. 특정금전신탁의 만기를 1년에서 3개월 이상을 단축시킨 것. 이에따라 은행권은 이달초부터 집중적으로 이른바 「맞춤형신탁」이란 이름으로 새상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한미은행의 경우 지난 7일 「셀프디자인신탁」이란 이름으로새 상품을 내놓아 고객의 입맞에 따라 다양하게 운용상품을 선택하도록 해 발매 8일만에 500억원에 가까운 엄청난 실적을 올렸다. 투신권의 대우채 환매자금을 이끌기 위한 상품으로 자금이동을 부채질한다는 비판을 들었지만, 신탁살리기에 한몫한 것은 부인키 어렵다.
◇은행신탁, 첨단상품의 각축장 된다= 정부가 발표한 은행신탁 제안완화의 핵심포인트는 크게 3가지. 3개월 이상 특정금전신탁이 이미 허용된데 이어 3월부터는 추가형신탁과 퇴직신탁을 허용하고 주식운용비율 상한선을 현행 30%에서 50%로 확대하는 한편 7월 시가평가제를 전후해 기존 신종적립신탁과 가계금전신탁 등의 신규수탁 등을 전면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중 3개월 이상 특정신탁은 은행권이 2월초부터 발매하기 시작,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맞춤형 신탁으로 등장한 이 상품은 이른바 「랩 어카운트(WRAP ACCOUNT)」상품으로 표현돼, 고객이 직접 신탁기간과 투자대상 자산 등을 선택·지정할 수 있는 상품으로 주식 및 채권 등 금융시장에 직접 투자한 경험이 있는 고객들로서는 승부를 걸어볼만하다.
3월부터 허용되는 추가형신탁과 퇴직신탁의 경우 시중은행들이 신탁부활의 핵심포인트로 삼고 있는 상품들. 외환은행의 경우 추가형신탁에 대해 1년 이상 신탁기간을 정해 100만원 이상의 자금을 유치키로 했다. 3월에서 5월중 대규모 경품행사도 기획하고 있다. 주식운용비율 확대가 적용돼 투신권의 간접투자상품과도 금리경쟁력에서 뒤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보험권에만 제한됐던 퇴직신탁은 노후보장적 성격을 장기상품으로 원본보전이 가능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기업이 납입하는 부금을 전액 손비처리돼 은행신탁의 거액예금 끌어들이기에 불을 지필 전망이다.
3월부터 판매예정인 상품 가운데 특징적인 상품중 하나가 「후순위담보채 펀드」. 운용자산의 50% 이상을 준투자적격채권 등에 투자, 배당률에서 승부를 걸어보란 하다. 일부 은행의 경우 공모주 우선권을 배정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은행신탁이 회심의 작품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중 하나가 「부동산신탁」. 수익률은 높지만 소액자금으로 개인투자가 불가능한 점에 착안, 은행이 개인고객의 자금을 모아 부동산에 투자해 수익을 돌려주는 상품으로 선진형 신탁상품으로 꼽힌다. 부동산 신탁과 함께 「재산관리신탁」도 적지않은 관심을 불러모을 전망이다.
은행신탁의 부활과 함께 종전 묵혀있던 신탁상품들도 속속 고개을 들고있다. 90년대 초반 일부 은행에서 한시 시행했던 「유언신탁」의 경우 하나은행이 올해부터 부활키로 방침을 정한데 이어 여타 은행들도 조만간 관련규정을 정비, 시판에 나설 계획이다.
은행 신탁 담당자는 『은행신탁의 진정한 싸움은 3월부터 시작될 것』이라며 올 은행예금의 판도를 가를 변수를 신탁상품에서 찾았다. 그는 이어 『신탁규정을 완화와 시가평가제 실시로 앞으로 은행신탁은 단위형신탁·특정금전신탁·연금형신탁·퇴직신탁 등 4두마차 체제로 재편될 것』이라면 『첨단상품의 등장아래 은행신탁이 「돈되는 상품」으로 각인되는 시대가 머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김영기기자YGK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