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5월1일] 스코틀랜드 독립운동


1328년 5월1일, 잉글랜드 중부 노샘프턴. 영국왕 에드워드 3세가 마지못해 ‘노샘프턴 조약문’에 도장을 찍었다. 골자는 독립 인정.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주인공인 영웅 윌리스가 독립을 위해 싸우다 처형 당한 지 23년 만이다. 노샘프턴 조약 379년 후인 1707년 5월1일, 양국은 ‘연합법(Act of Union)’에 서명한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합친 연합법 이후 영국의 공식 명칭은 ‘브리튼 연합왕국’으로 바뀌었다. 데인과 색슨ㆍ앵글ㆍ노르만족이 주류인 영국과 달리 켈트족인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원수처럼 싸워온 영국에 사실상 피합병된 후 제국의 발전을 이끌었다. 합병 당시 850만명 대 150만명라는 인구비율에도 스코틀랜드 출신들은 동인도회사 간부의 47%를 차지하는 등 각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도 영국지성계를 이끈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자 그룹의 일원이다. 영국군의 최정예 부대로 꼽히는 42보병연대도 전원 스코틀랜드 출신이라는 전통을 갖고 있다. 스코틀랜드는 영원히 그레이트 브리튼 안에 머물까. 그렇지 않아 보인다. 독립 움직임이 구체화하고 있다. 당장 5월3일 실시될 선거 결과에 따라 독립운동의 속도가 결정될 전망이다. 스코틀랜드 국민당의 독립운동 명분은 경제. 북해유전 등 자원을 가졌으면서도 잉글랜드에 복지혜택과 개발에서 차별 당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영국은 초비상 상태다. 독립운동이 활발해지면 켈트족 지역인 웨일스ㆍ북아일랜드 상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범켈트족 연대’를 꿈꾸는 웨일스와 아일랜드, 프랑스 브르타뉴 지역의 켈트족도 스코틀랜드 독립을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 스코틀랜드인들은 과연 역사를 300년 전 연합법 이전 상태로 되돌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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