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영어의 마법에 걸린 사회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매체를 통해서 영어 교육 관련 기사를 접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 전체가 영어의 마법에 걸려 있는 듯하다. 실제 우리 현실을 보면 일상생활 속에서 영어를 접할 기회는 거의 없다. 또한 영어는 우리끼리 의사소통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민들은 영어를 추가적인 언어(additional language), 또는 제2언어(second language)로 배우고 싶어 한다. 그 속에는 일종의 한풀이도 한몫을 하고 있다. 결국 단일 모국어 사용 환경, 국민들의 의식 변화, 그리고 외국어로서 학교 영어 교육이 갖는 상호 모순된 상태가 얽혀 있는 것이 우리 사회 현주소이다. 여기서 잠깐 그동안 영어와 관련해 논의됐던 대안들을 살펴보자. 영어 공용화, 내국인을 위한 24시간 영어 방송, 영어 조기 교육, 지방자치단체 영어마을 건설, 영어몰입 교육, 학교 원어민 영어교사 배치, 학교 내 영어지역 설치, 대학 수능에서 영어를 배제한 단계별 영어인증제, 영어 말하기 평가 도입 등. 실로 영어와 관련해 제안된 것들은 수십 가지가 넘는다. 아마도 이 대안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두 그대로 끌어안는다면 우리나라는 단시일 내에 ‘영어 사용 공화국’이 될지도 모른다. 가장 극단적인 접근에서부터 가장 소극적인 대안까지 가능한 모든 방안들이 제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들 중 일부는 이미 사교육을 통해서 구현되고 있으며 공교육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미시정책부터 거시정책까지 체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대안들이 일회적이고 단편적이며 근시안적이다. 따라서 이제는 국가 차원에서 영어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단지 영어 교육 차원에서 접근이 아니라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종합적인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 교육 과정은 국민의 의사가 반영돼야 하는 것이고 많은 국민들이 영어 교육에 불만인 것을 보면 영어 교육은 분명 개선의 여지가 있다. 특히 공교육에서부터 그래야 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영어만 되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해서 보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길은 없을까. 영어 교육에 대한 전국민적인 몰입 현상은 우리가 얼마 전에 줄기세포 사건을 통해서 보여줬던 것과 매우 유사하다. 세상 문제에 대해서 동전의 다른 한쪽 면을 보려고 하지 않으니 영어 문제 또한 해결이 쉽지 않다. 일순간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법의 지팡이를 휘두르는 것이 과연 얼마나 현명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영어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필요하고 영어를 얼마나 구사하면 어느 정도의 경제적인 효과가 있는 것일까. 모든 국민이 영어를 다 잘해야 하는 것인가. 잘해야 한다면 어느 정도나 잘해야 하는 것인가. 과연 영어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얼마나 되고, 어느 분야에 진정 필요한 것인가. 대학이나 사회는 왜 영어 문제에 대해서 실용적으로 접근하지 못하는 것인가. 한편 국제 사회가 이렇게 급변하는데 다른 외국어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과연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영어 문제에 올인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영어의 마법이 풀리고 난 뒤에 올 허탈함과 그 모든 부작용은 어떻게 추스를 것인가. 누군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건 그때 가서 걱정하면 될 일이야. 뭘 미리 걱정하는 거야. 현재는 현재가 중요하며 영어는 돈이고 권력이야. 빨리빨리 가야지.” 그렇다. 영어에 대해서 변화는 필요하다. 그러나 마법의 지팡이를 마구 휘두르지 말고 조금은 꼼꼼히 합리적으로 따지고 가야 길이 보이지 않을까. 교육은 백년지대계라 했는데 하물며 영어는 우리 사회의 언어 사용과 관련된 문제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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