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6월 23일] 구둣방 아저씨의 인스턴트 서비스

변동식(CJ헬로비전 대표)

얼마 전 KTX를 타고 대구에 내려갔을 때의 일이다. 택시를 타자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택시기사는 힐끔힐끔 필자의 모습을 살피더니 택시 안을 이내 즉석 비즈니스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단말에서 저녁 뉴스가 흘러나오고 뒷좌석에 신문과 비즈니스 잡지가 펼쳐졌으며 요금은 신용카드로 결제됐다. 택시에서 내리자 기사는 뒷자리로 달려와 분실물이 없는지 확인한 뒤 공손하게 인사하며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서울로 오는 길 휴대폰에는 ‘오늘 모시게 돼 반가웠다’는 문자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절제된 말투와 진정성 있는 기사의 친절한 모습을 생각하며 명함에 적힌 전화번호를 휴대폰에 저장하고 흐뭇해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예전 필자가 자주 다니던 헬스클럽 입구에서 구두를 닦는 아저씨의 ‘인스턴트 친절’ 전략과 대비됐다. 아저씨는 필자가 구두를 닦는 날에는 과도할 정도의 인사치레를 했지만 그렇지 않은 날에는 시선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치열한 경쟁에 놓인 우리 산업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쓰름했다. 가노 노리아키 교수는 ‘카노 모델(Kano Model)’로 상품과 서비스의 기능을 세 가지 범주로 나눠 고객 서비스의 수준과 기능을 제시한다. 세 가지 요소는 반드시 포함돼야 할 기본적 요소와 뭔가 다르게 인식될 수 있는 차별적 요소, 그리고 다른 서비스와 차별화되는 독특함을 상징하는 매력적 요소로 정의된다. 노리아키 교수는 기본적 요소를 가장 중요하게 제시하면서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해당 서비스에 대한 고객 만족도가 급격하게 떨어져 복구하기 어려운 신뢰에 치명적인 인식을 남긴다고 주창했다. 국내 이동통신 및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의 해지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평균을 2배 이상 상회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포화된 시장에서 사업자들 간의 가입자 유치전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보여주는 지표라 할 수 있겠다. 이런 제로섬게임 시장환경에서 사업자들은 기존 고객을 어떻게 잘 보호하고 고품질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다 남의 고객을 뺏어오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 유치를 위해 고객에게 현금 몇 십만원을 입금하는 초유의 마케팅 혈전이 지금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고객에 대한 이 같은 과도한 서비스는 가입자 유치 단계에서만 이뤄질 뿐인 것 같다. 택시기사가 보여준 진정어린 친절함이 아닌 구둣방 아저씨가 구두 닦는 사람에게만 베풀었던 인스턴트 친절 서비스같이 말이다. 허물어진 기본 위에 현금이라는 달콤한 서비스를 덮어놓고 있는 현실. 과연 우리나라를 진정한 정보통신 강국이라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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