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고교 무상교육의 역설


무상급식ㆍ무상보육 및 유아교육에 이어 고교 무상교육으로 교육복지 범위가 계속 확대되고 있다. 국가가 돈이 많아 모든 교육을 무상으로 제공할 수 있다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제한된 규모의 교육재정으로 고교 무상교육을 우선적으로 실시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고교 무상교육 찬성론자들은 보편적 복지의 개념을 들어 선택적 교육비 지원이 아닌 보편적 무상교육을 주장한다. 그러나 보편적 복지 차원의 고교 무상교육이 전혀 보편적이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기 위해 선택적 복지정책보다 더 많은 재정을 투입해도 역설적으로 복지혜택은 선택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고교 무상교육을 전면 실시하는 데 연간 3조2,000억원 정도의 재원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현재 기초생활수급자 자녀, 저소득층 및 한부모 자녀, 특성화고교 재학생, 공무원 자녀 등에게 지원되는 고교 학비지원 규모는 연간 총 1조2,000억원이다. 고교 무상교육을 완성하는 데 연간 2조원 정도의 추가 재정이 소요됨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일반 회사원들에게 기업이 지원하는 고교 자녀학비 보조금이 있으나 규모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적어도 연간 3,000억원 정도 될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2조원 더 들지만 교육 질은 저하


고교 무상교육이 실시된다면 기업이 재직자에게 지원하던 고교 학비지원금 3,000억원을 지원할 필요가 없게 된다. 기업 대신 교육청이 자녀 학비를 부담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인건비 예산에서 절약되는 3,000억원은 고스란히 기업의 몫이 된다. 현재로서는 기업으로 흘러 들어갈 3,000억원을 마땅히 환수할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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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무상교육의 역설은 회사로부터 자녀 학비보조금을 지원받던 회사원들에게 발생한다. 보편적 복지라는 이름으로 모든 고교생에게 학비가 지원되지만 이들 회사원에게는 추가적인 복지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 이들 회사원이 고소득층이기 때문에 복지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보편적 복지를 위해 2조원이라는 천문학적 재정이 투입돼도 이들 회사원은 종전과 달라지는 것이 없다. 회사가 지원하던 학비를 교육청이 부담할 뿐 개인의 주머니사정은 마찬가지다. 회사가 지원하던 학비를 교육청이 지원하는 데 소요되는 재정이 무려 3,000억원이나 되지만 회사원들은 보편적 고교 무상교육 실시로 지출되는 재정의 혜택을 한푼도 받지 못한다. 학비 지원을 받던 회사원에게 고교 무상교육은 보편적 복지가 아니라 선택적 복지일 수밖에 없다.

회사원 학비지원 혜택도 없어져

설상가상으로 고교 무상교육에 필요한 2조원은 기존의 교육재정 구조를 통해 확보하는 것으로 돼 있다. 증세를 하지 않고 현행 지방교육재정 구조를 유지하는 한 고교 무상교육에 필요한 재정은 현재 교육활동과 교육여건 개선에 투입되고 있는 재정을 줄여서 확보할 수밖에 없다. 고교 무상교육이 교육의 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학생 수가 줄기 때문에 세출 구조조정을 통해 복지재정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하나 인건비·학교운영비 등 경직성 경비의 비중이 높은 교육재정의 특수성과 학생 수가 줄어도 학교 수 및 교원 수가 늘어나야 하는 현실을 외면한 탁상공론일 뿐이다.

소극적 의미에서 교육복지는 교육 소외집단에 교육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지만 적극적 의미에서는 교육의 질을 높여 교육다운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기업의 교육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교육의 질을 포기해야 한다면 이는 명백히 교육복지의 본질이 아니다. 이제 정부는 교육복지의 본질로 돌아가 고교 무상교육 실시정책을 전면 재검토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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