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이 무섭기는 무서운가 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지만 요즘 들어 부쩍 걱정이 많아졌다. 60~70대가 아닌 40대가 사망했다는 소식도 들리고 1·2·3차도 모자라 이제는 4차 감염자까지 속속 등장했다고 하니 두려움이 생긴 모양이다. 하기는 방호복을 겹겹이 입은 의료진도 감염됐다 하니 무방비나 다름없는 일반인이야 오죽하랴. 당장 이번주 말 병원을 찾아야 하는데 예약 취소를 해야 하나 고민이다. 그런데 주변을 보니 이런 걱정을 하는 게 혼자만은 아닌 듯하다. "도무지 무서워서 갈 데가 없다"는 푸념이 사방에서 들리고 평소 같으면 차로 꽉 막히던 도로와 인파로 북적이던 놀이공원과 시장은 요즘 한가하다 못해 적막감이 흐른다. '다 같은 생각이구나.'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정부 발표를 듣고 있으면 우리가 뭔가 한참 잘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대통령은 그 흔한 마스크도 쓰지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대한민국은 안전한 나라" "국민들의 일상생활과 기업 경영활동이 하루속히 정상으로 돌아와야 한다"며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얘기하고 다니고 있다. 한때 도지사까지 지냈던 정치인은 "핵무기는 겁 안 내면서 중동 낙타 독감은 겁내는 나라"라며 "웃긴다"는 표현까지 썼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다녀서는 안 될 것 같고 살 게 없어도 마트에 가야 할 것 같다. 남들이 기침을 해도 절대 뒤돌아 봐서는 안 된다. 겁쟁이 취급을 받기 때문이다.
정부는 말한다. 지나친 공포는 경제와 사회 불안을 야기한다고. 방역 당국에서 잘하고 있으니 말 잘 듣고 차분히 대응하라고. 거칠게 표현하면 '우리가 제일 잘 아니 지시에 무조건 따르라'는 식이다. 그렇지 않아도 착한 국민들인데 이런 말까지 했으니 얼마나 잘 따랐을까. 방역 당국을 믿으라고 해서 믿었고 건강한 사람은 절대 아무 일 없고 일상생활을 해도 된다고 해서 그렇게 했다. 사실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메르스에 감염된 사람이 누구고 어떤 경로로 환자가 나왔는지 정부만이 알고 있으니. 어떤 게 진실이고 거짓인지 판별하기 힘든 상황에 유언비어를 유포하면 경찰이 잡아간다고 하니 그것이 무섭기도 했을 터다. 이렇게 말 잘 듣고 하라는 대로 다 했더니 20명 '밖'에 안 죽었다. 치사율 12.3%. 중동에서 메르스로 인한 사망률이 30%인데 우리나라는 3분의1 수준이니 잘했다고 박수라도 쳐줘야 하겠다.
대통령까지 나서 그토록 "안심하라" 외치는데 도대체 왜 우리는 불안하기만 할까. "이번주 말이 고비"라는 말은 왜 수없이 반복되고 있는 걸까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아무도 대답을 안 해준다. 정부도 청와대도 어느 누구 하나 국민이 얼마나 무서워하고 그 두려움이 어디서 촉발됐는지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다. 그저 공포는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두려움에 떠는 대중은 '교화'의 대상으로 취급될 뿐이다. 무서워도 무섭지 않다고 얘기해야 하는 상황. 우리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던 홍길동이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다.
대통령은 "자나 깨나 국민의 먹고사는 걱정 외에는 다 번뇌"라고 했다. 그렇다면 초등학교에 가서 "메르스는 중동식 독감"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여러분 얼마나 놀랐습니까. 앞으로 얼씬도 못하게 하겠습니다"고 했어야 옳았다. 지난주 말 동대문 시장에서도 "국민들께서 너무 위축되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하시고 병원에 오시는 것도 걱정하지 않으시도록 많이 알려야 한다"는 말 대신 "국민들이 많이 두려워하니 정부가 걱정 끼치지 않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로 바꿔 말해야 했다. 국민을 진정 걱정한다면 말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메르스를 걱정하는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들의 두려움을 존중하며 어루만지는 것이다. 이게 전염병이 도는 시기에 소통하는 방법이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괜히 떨어지는 건 아니다.
/송영규 논설위원 sko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