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셰네 지음. 한울 펴냄
“세계화는 신화가 아니라 현실이다. 세계화를 추동하는 강력한 세력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과거와는 달리 세계경제에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해 가고 있다.”
프랑스 파리8대학 협력교수로 있는 저자는 세계화가 저절로 이뤄져 가는 현상이 아니라 누군가 목적의식을 가진 실체에 의해 계획적이고 주도적으로 추진돼 가는 하나의 `프로젝트`라고 선언한다. 이런 의미에서 세계화는 신화가 아닌 `현실 그 자체`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금융자본 다시말해 `돈`이 세계화의 숨겨진 연출자로 인식한다.세계화란 다른 말로 표현하면 `금융주도 글로벌 축적체제`라는 것. 전지구적 차원의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새로운 축적체제가 바로 `세계화`라는 망령이라는 얘기이다. 여기에는 생산을 수행하는 개별 산업자본과 공공채무에 시달려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해 온 미국ㆍ영국 등 선진국 정부가 은밀하게 개입돼 있다. 선진국 정부들은 국제금융기구와 법제도의 정비를 통하여 금융자본의 세계적 규모의 축적과정을 지지하고 후원한다. 저자는 이런 과정을 `채권자 독재`라 부른다.
이러한 세계화에 대한 저자의 시각은 비관적이다. 개별 자본의 투자논리와 국가의 논리가 결합해 전지구적 차원의 디플레이션의 가능성을 누적적으로 확대재생산하는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돈`으로 말아올린 세계화라는 바벨탑은 거품이라는 과정을 통해 환상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나, 수요와 공급이 어긋나 결국은 자산가치의 폭락 즉 `디플레이션`이라는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는 진단이다.
저자는 현재와 같은 세계화 과정은 필연적으로 개별 가계의 고용, 소득 및 수요의 감소를 초래함으로써 과잉생산에 따른 불황의 가능성을 점점 키우고 있다고 진단한다.세계적인 차원에서의 자본의 확대재생산이 수요처를 발견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가능성은 이미 90년대이래 일본 경제의 10년이 넘는 장기 불황에서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나아가 저자는 지난 90년대 미국이 예외적인 호황을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다가올 세계 공황은 `미국발`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까지 스스럼없이 경고하고 있다.
저자는 세계화의 필연적 결과로 위계화와 양극화를 강조하고 있다. 위계화는 세계화 과정에서 미국의 자본과 미국식 자본주의가 지배력을 행사하는 구조로 나아가고 있으며, 양극화는 세계화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자본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로 이 과정에서 소외돼 점차 파산의 위협에 내몰리고 있는 주변지역의 국민자본들이 있다는 의미다. 지난해 세계 자본이동(외국인 직접투자기준)의 3분의 1이 중국에 집중되고 있는 반면 중남미, 중동ㆍ아프리카 지역으로의 자본 투자는 극히 적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감소하고 있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저자의 이런 주장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 책은 자본의 세계화 운동 자체가 스스로의 생존 기반을 침식하고 있고, 그럼에도 이를 저지하거나 통제할 국제적인 조절양식이 부재한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프랑스의 조절론적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세계적 차원의 자본 운동이 결국은 스스로를 파국으로 내몰고 이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어할 아무런 수단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전통적인 정치경제학적 사고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하지만 저자를 섣불리 세계화 반대론자로 단정하기는 이르다. 저자가 세계화 자체에 반대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다만 세계화를 주도하고 있는 자본의 자기파멸적 메커니즘을 경고하면서 새로운 방식의 세계화를 위한 집단적 노력이 요구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미국ㆍ영국 등이 주도하고 있는 현재의 세계화 추세를 반전시킬 수 있는 새로운 세계화의 대안을 충분히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여전히 아쉬운 대목으로 남는다.
전체 12장으로 구성돼 있는 이 책은 다소 학술적인 성격이 강해 소화하기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지만 우리 주변에서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의 이론적 배경이나 전망을 제대로 보여주는 책이 드물다는 우리 독서 현실을 감안할 때 전문가뿐 아니라 이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일반 독자들도 한번 도전해 볼 만한 책이라 생각된다.
<강동호기자 easter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