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인종 국가인 미국에서도 뉴욕은 대표적인 인종의 용광로(melting pot)이다. 뉴욕 맨해튼의 명물인 센트럴파크 부근에 즐비한 초고층 호화 아파트군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는 저소득 흑인밀집지역인 할렘이 자리하고 있다. 하늘을 찌를 듯한 마천루와 고급 아파트 사이의 뒷골목은 밤이면 치안 부재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는 곳이 뉴욕이다. 한국의 재력가들이 신병치료를 위해 미국 병원을 찾지만 정작 미국 전체 인구의 16%인 4,700만명은 의료보험이 없다. 불법체류자를 포함해 뉴욕시민의 10%는 절대 빈곤층이다.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 기념일로 휴일인 19일. 맨해튼 동쪽 퀸스 롱아일랜드시티에서 만난 흑인 제임스 케인은 “인종차별이 없는 나라를 건설하려던 킹 목사의 못다 이룬 꿈을 오바마가 실현시킬 것”이라며 “오바마는 링컨 대통령 이후 인종 문제에서 가장 많은 진전을 이뤄낼 것”이라고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건국 232년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 시대의 개막은 미국 사회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과 흑백의 갈등을 치유하고 새롭고 하나 된 미국을 예고하고 있다. 오바마는 인종갈등과 빈부격차 등 사회통합을 가로막는 것들에 도전하겠다고 공언해왔다. ‘제2 건국’이라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다. 오바마 당선인은 이날 “대통령 취임은 킹 목사가 외쳤던 흑백차별 철폐라는 미국의 약속을 새롭게 하는 과업의 연장”이라며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할 것을 다짐했다. 분열과 갈등 치유에 대한 희망의 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가 인종차별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 이날 공개한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 10명 중 6명은 인종차별 문제가 오바마 행정부 시대에 개선될 것이라고 응답했다. 이는 10명 중 4명만 개선될 것이라고 조사됐던 지난해 6월보다 크게 나아진 것으로 사회통합과 변화에 대한 기대감을 반영했다. 이날 뉴욕타임스(NYT)는 인종 갈등으로 2개로 갈려졌던 워싱턴DC의 감리교회가 오바마 취임을 계기로 한세기 만에 화해를 모색하고 있다는 소식을 크게 다뤘다. 김동석 뉴욕한인유권자센터 사무총장은 “흑인이라는 핸디캡을 딛고 오바마가 44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사회통합에 대한 미국인의 높은 열망을 반영한 것”이라며 “오바마 시대의 개막은 인종과 성별ㆍ이념으로 분열된 미국이 화합의 용광로에 들어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통치 코드는 화합과 실용이다. 초대 내각은 오바마가 추구할 통합의 리더십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내각에는 흑인계와 라틴계ㆍ아시아계가 골고루 섞였다. 젊은 층으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그는 신구 세력을 아울렀다. 81세의 고령인 폴 볼커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백악관 경제회복위원회(ERAB) 의장에 기용됐다. 경륜이 필요한 외교안보팀에는 60대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코드’와 정파가 인물까지 포용했다. 경선 라이벌인 힐러리 클린턴 의원을 국무장관으로 내정했을 뿐만 아니라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을 유임시켰고 레이 라후드 공화당 의원을 교통장관에 기용하는 포용의 정치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뿌리 깊은 인종 갈등과 빈부격차, 사회 갈등이 한꺼번에 해결된다는 보장은 없다. 오바마의 공약집인 ‘변화를 위한 청사진’에 따르면 경찰에 의해 제지 당한 흑인이나 라틴계가 수색ㆍ체포될 확률은 백인보다 2배나 높다. 절반 이상의 흑인은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로 고용에서 차별을 당한다는 조사 결과는 인종의 장벽이 높고 견고한 미국의 현실을 말해준다. 인종차별은 빈부격차와 범죄의 악순환을 낳는다. WP는 “인종차별을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하는 비율은 점점 줄어들고 있으나 인종차별은 과거 6년 동안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재미 한인 교수는 “아이비리그를 졸업한 똑똑한 한인 젊은이들이 사회진출 이후 소수인종의 한계를 뒤늦게 절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백인 주류 사회의 장벽은 매우 견고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백인 보수층까지 소수인종을 포용할 정도가 돼야 비로소 미국에서 인종장벽이 허물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