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막오른 브레턴우즈 3.0시대] <상> 미국이 자초한 금융질서 균열

"美, 주변국 비명에도 달러패권 집착"… 유럽·신흥국 반발 거세

서브프라임 사태 저질러 놓고 자국 보호만 혈안

실탄 떨어진 美주도 금융기구 입김도 크게 줄어

새 구원투수 中 부상… 팍스 달러리엄 갈수록 위태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은 세계 경제에 필요하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중국을 '경제적 적'으로만 규정해 동맹국의 분열을 부추기고 있다"

26일자 텔레그래프의 비판이다. 한마디로 미국이 달러 권력을 과도하게 휘두르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AIIB 설립을 통해 글로벌 금융패권에 도전하기 시작한 것도 미국이 자초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의 경제적 영향력이 퇴조하고 있는데도 독점적 지위를 고수하려다 신흥국은 물론 선진국의 반발을 자초하고 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단일 기축통화의 문제점이 누적되고 있어 글로벌 경제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대안 마련에 대한 요구가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달러 권력 남용한 미국=주요10개국(G10) 재무장관회의가 열린 지난 1971년 11월 로마. 당시 미국 리처드 닉슨 행정부의 존 코널리 재무장관은 "달러는 우리 통화지만 문제는 당신들이 풀어야 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달러의 금태환 중단 조치 이후 달러 약세의 부작용에 유럽이 고통 받고 있는데도 미국은 상관할 바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미국의 이 같은 고압적인 자세는 이후로도 줄기차게 이어졌다. '세계의 중앙은행'이라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경기회복을 위해 유동성을 풀면 신흥국은 자산 버블에 시달렸다. 또 거꾸로 긴축조치를 단행하면 외국인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금융위기로 내몰렸다. 1990년대 아시아 외환위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로 촉발됐지만 정작 타격은 유럽과 신흥국이 가장 컸다.


2013년 5월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이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조치를 시사했을 때도 신흥국은 '긴축 발작(taper tantrum)'을 일으키며 금융위기 직전까지 몰렸다. 지난해 4월 라구람 라잔 인도 중앙은행 총재가 버냉키 의장의 면전에서 "연준의 통화정책에 신흥국 경제가 위협 받고 있고 글로벌 경제의 게임규칙이 고장 나고 있다"고 맹비난했을 정도다.

관련기사



특히 최근에는 미국이 정치적 목적과 자국 기업 보호를 위해 '달러 프리미엄'을 휘두르고 있다는 불만까지 제기되고 있다. 세계 경제 유지라는 브레턴우즈 체제의 기본정신을 망각했다는 것이다. 2012년 미국 법원은 헐값에 채권을 사들인 미국계 벌처펀드에 대해 채무 전액을 상환하라고 판결하며 아르헨티나를 기술적 디폴트(채무불이행)로 몰아넣어 국제통화기금(IMF)조차 비난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또 미국은 BNP파리바가 자국의 경제제재 대상국인 수단 등과 거래했다는 이유로 89억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벌금을 매겨 프랑스 정부의 반발을 샀다.

◇미국 금융 리더십에 의구심 증폭=반면 중국 등 신흥국 경제 부상의 여파로 미국의 경제·금융 영향력은 갈수록 줄고 있다. 세계 국내총생산(GDP)에서 미국의 비중은 2000년 31%에서 2013년 22%로 줄었다. 주요국 중앙은행 외환보유액 가운데 미 달러화의 비중도 1970년대 80%에 거의 근접했다가 2013년 60.9%로 하락했다. 기축통화를 지탱하는 △거대 실물경제 △개방되고 풍부한 금융·외환시장 △안정된 금융제도 가운데 한 축이 약화되고 있는 셈이다.

또 미국이 대안도 없이 달러 권력 유지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신흥국의 비판이 거세다. 게다가 미국 주도의 국제금융기구는 실탄 부족에 시달리면서 영향력이 갈수록 축소되고 있다. 러시아·아르헨티나·베네수엘라 등의 디폴트 가능성이 커졌을 때 긴급자금을 수혈한 곳은 IMF가 아니라 중국이었다.

중국의 AIIB 설립 역시 역설적이지만 미국이 촉발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오바마 행정부가 중국을 제외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아시아 중심축' 외교전략 등으로 숨통을 조여오자 중국이 탈출구 마련 측면에서 역공을 가했다는 얘기다. 물론 현재로서는 미국의 금융패권이 단기간 내 결정적 타격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미국의 경제적 영향력이 낮아진 가운데 신흥국의 불만이 거세지고 있어 금융위기가 닥치면 '브레턴우즈 3.0' 시대 논의가 순식간에 급물살을 탈 가능성도 있다. 실제 중국 주도의 신개발은행(NDB) 설립 논의가 본격화한 것도 2013년 연준의 테이퍼링 시사로 신흥국 금융시장이 요동칠 때였다.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주요20개국(G20) 정상들은 영국·프랑스 주도로 브레턴우즈 체제의 대체방안을 논의했다. 2010년에는 로버트 졸릭 전 세계은행 총재가 '브레턴우즈 2.0' 체제의 대안으로 주요5개국 통화와 금 가치를 연동한 변동금본위제 실시를 주장했다. 2013년 워싱턴 정가의 이전투구로 미 국채의 디폴트 우려가 커졌을 때도 '브레턴우즈 3.0' 도입 주장이 나왔다.


최형욱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