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하오는 좌변의 백대마를 패로 붙잡고 늘어졌다. 그러나 이창호는 여차직하면 그쪽 대마를 버리고 둘 작정이다. 더구나 한수늘어진패니까 거의 부담이 없다. 38로 딴전을 피우자 39로 몰아 이젠 정말로 패가 되었는데…. “승부가 되질 않는군요. 오늘의 창하오는 한국의 초단들보다 둔해 보입니다. 승부를 해보려면 억지패를 고집할 게 아니라 좌상귀를 어떤 식으로든 걸쳐가야 합니다.” 조훈현의 해설이다. 흑이 63의 자리쯤에 걸쳐가면 아직 희미하게나마 승부의 여지가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진작부터 노리던 백44. 이곳마저 백에게 손이 돌아가서는 흑의 패색이 더욱 짙어졌다. 흑73으로 기어나온 것은 형세가 미세했더라면 엄청나게 큰 변수가 되겠지만 이 바둑은 이미 큰 차이가 나있으므로 사소한 끝내기에 불과했다. 아마추어의 욕심으로는 백이 참고도의 백1 이하 5로 두어 이득을 취할 만도 한데 이창호는 끝까지 이곳을 건드리지 않았다. 백5로 이득을 얻는 것보다 흑4가 사두(蛇頭)가 되어 상변쪽에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이 앞섰던 모양이다. 결국 창하오는 8강에 만족해야 했다. 이튿날 대국한 왕레이8단 역시 조선진9단에게 패했고 제4회 삼성화재배는 이창호에게 돌아갔다. (37, 43, 49, 55…30의 아래. 40, 46, 52…34) 184수이하줄임 백불계승. /노승일·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