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 산책/2월 27일] 정월대보름 장보고장군제

28일은 정월대보름이다. 조상 전래의 미풍양속을 이어오는 전국의 수많은 마을이 이날 당제(堂祭)를 지낸다. 갖가지 제물을 차려놓고 흥겨운 사물놀이를 곁들여 마을의 안녕과 풍작, 주민의 건강과 소원성취 등을 천지신명과 조상들에게 비는 것이다. 전남 완도읍 장좌리의 장보고장군제(張保皐將軍祭)는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정월대보름 당제로 손꼽힌다. 장좌리는 1천여년 전 바다의 영웅 장보고가 무적함대 기지로 삼아 동양 삼국의 해상항로를 호령하던 청해진(淸海鎭) 옛터다. 정치에 휘말려 암살된 장보고 완도읍에서 5㎞ 떨어진 장좌리는 장보고가 있던 역사의 현장이라고 해서 전에는 장재리(張在里)라고 불렀다. 마을주민들은 해마다 정월대보름이면 장보고장군제를 당제로 베풀어 그의 위업을 기리고 마을의 번영과 새해의 풍어를 기원한다. 장보고당제는 정월대보름 전날 밤 장좌리에서 170m 떨어진 장도(장군섬) 정상의 장보고신당에서 당제를 여는 것으로 시작된다. 지금은 마을과 섬을 이어주는 다리가 놓였지만 전에는 당제가 끝나면 굿중패와 주민들은 여러 척의 고깃배에 나눠 타고 마을로 돌아오는데 그 모습이 장관이었다. 울긋불긋한 고깔을 쓰고 바지저고리에 드림을 받쳐 맨 굿중패가 징징 둥둥 쿵덕쿵덕하고 북ㆍ장구ㆍ꽹과리ㆍ징 등 사물을 흥겹게 치고 두드리며 덩실덩실 으쓱으쓱 어깨춤, 궁둥이춤을 신명 나게 추면서 마을로 돌아오는 것이다. 신명 나는 풍물소리가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바다와 하늘을 울리면 그 옛날 바다의 영웅 장보고의 무적함대가 힘차게 노 저어나갔을 그 바다, 그 뱃길도 이들의 신명에 화답하듯 흥겹게 일렁대며 춤추는 듯하다. 일세의 영웅 장보고는 신라 흥덕왕 3년(828) 당에서 귀국해 이곳에 청해진을 설치하고 해적들을 소탕한 뒤 신라ㆍ당ㆍ왜 삼국 무역의 중심지로 삼았다. 그가 제해권을 장악한 후 동양 삼국의 해상항로는 안전하게 됐고 국제무역은 활기를 띠게 됐다. 하지만 문성왕 3년(841)부터 벌어진 신라 왕실의 추악한 왕위쟁탈전에 휘말려 장보고는 비열한 정치꾼들에게 허망하게 암살당했고 청해진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버렸다. 청해진이 혁파된 뒤 주민들은 먼 내륙인 벽골제, 오늘날의 전북 김제로 강제 이주 당했지만 완도에는 고려시대에도 사람들이 살면서 장보고의 유덕을 기렸다고 전한다. 집안싸움의 비극 잊어선 안돼 장보고는 이처럼 죽어서 민중의 신장(神將)이요, 수호신이 된 것이다. 왕조 중심의 편협한 정사(正史)에서는 중앙정계 진출을 꾀하다 몰락 당한 시골 장수쯤으로 무시당했지만 그가 1,200년 전 동북아의 바다를 호령하던 곳 청해진 옛터 완도의 향토사 속에서는 그의 위대한 기상이 살아남아 여전히 추앙 받고 있는 것이다. 일세의 풍운아 장보고의 암살은 장보고 개인의 비극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 뒤로 우리나라는 해양진출ㆍ해상제패의 원대한 꿈을 꿔보기는커녕 비좁은 국토 안에서 집안싸움을 하거나 몽골족ㆍ거란족ㆍ여진족과 홍건적ㆍ왜적들의 침범과 노략질을 연거푸 당하는 부끄러운 역사를 되풀이해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또한 통렬한 역사의 교훈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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