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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조성진 LG전자 HA(생활가전)사업본부 사장을 수사 의뢰한 것은 양측의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삼성전자의 이번 조치는 한마디로 전쟁터에서 싸움을 지휘하는 적장을 수사 의뢰하는 초강수다. 따라서 삼성전자가 최고경영자(CEO)를 겨냥한 만큼 이번 사건은 과거 양사의 갈등과는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당초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IFA 2014' 개막을 이틀 앞둔 지난 3일(현지시간) LG전자의 직원이 삼성전자 세탁기를 파손하다 적발된 사건은 해당 직원이 변상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며 단순 해프닝으로 지나가는 듯했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국내에 돌아와 이번 사건의 주도자로 LG전자 HA(생활가전)사업본부를 책임지고 있는 조 사장을 공개적으로 지목하면서 일파만파로 파장이 커지게 됐다.
삼성전자가 밝힌 조 사장 등 LG임직원들의 혐의는 업무방해와 명예훼손·재물손괴 등이다. 삼성전자는 "외국에서 최고위 임원이 직접 타사 제품을 파손시킨 것도 심각한 사안이지만 거짓 해명을 통해 당사 전략제품을 의도적으로 깎아내린 것은 그냥 넘길 수 없다"고 강경한 입장을 나타냈다. 세탁기가 망가진 부분은 변상하면 될 일이지만 제품이 마치 원래부터 하자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해 이미지를 떨어뜨리고 삼성전자의 전략 제품을 비하해 임직원의 명예까지 상처를 입힌 만큼 검찰 수사를 통해서라도 진실을 가리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LG전자도 반박자료를 내고 맞대응에 나섰다. LG전자는 "조 사장과 임직원들이 해당 매장을 방문해 여러 제품을 살펴본 것은 사실"이라며 "해외 출장에서 경쟁사 제품을 살펴보는 건 통상적인 일"이라고 밝혔다. 이어 "다른 회사 세탁기들과는 달리 유독 특정 회사(삼성) 해당 모델의 힌지(연결부) 부분이 취약했다"며 "검찰 조사에 협조하겠다"고 설명했다. '세탁기가 망가진 것은 제품 탓'이라며 다시 한 번 삼성을 자극한 셈이다.
양측이 자사 제품과 임직원의 명예를 걸며 강경히 맞서고 있는 만큼 검찰 수사 이후 소송전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두 회사는 과거에도 수차례 맞붙은 적이 있다. 지난해에는 냉장고 용량과 디스플레이 특허를 놓고 전면전을 벌였다. 냉장고 분쟁은 삼성전자가 2012년 8월 양사의 냉장고를 눕혀놓고 물을 붓는 실험을 하는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린 게 발단이 돼 수백억원의 쌍방 손해배상 청구소송으로 이어졌지만 지난해 8월 두 회사가 법원의 권고를 받아들여 관련 소송을 전부 취하했다. 2012년 5월 검찰이 삼성의 디스플레이 기술을 유출한 혐의로 LG디스플레이 본사를 압수수색을 하며 벌어진 디스플레이 분쟁도 소송전으로 확대되는 듯했지만 양측이 지난해 9월 합의하며 마무리됐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건에 대해 "삼성전자와 LG전자 모두 2015년 생활가전사업 세계 1위를 목표로 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며 "CEO까지 연루된 사건인 만큼 이전의 공방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의 갈등이 야기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