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초 멕시코 칸쿤 회의에서 합의점 도출에 실패했었던 세계무역기구(WTO)가 현행 만장일치제인 의사 결정 시스템의 대대적인 수술을 추진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9일 보도했다. 이는 현재 146개국에 달하는 회원국 모두를 설득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시스템이 개정돼 보다 빠른 의사결정이 가능해 질 경우 그 동안 탈출구를 찾지 못했던 농업협상 등의 도하라운드 협상이 속도를 내며 조속한 타결이 가능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WTO는 만장일치제에 대한 대안으로 일부 국가들이 반대할 지라도 안건을 통과시키되, 반대하는 국가들은 통과된 안건의 권리ㆍ의무 관계에서 제외시키는 `탈퇴 선택 조항(opt-out clause)`을 현재 논의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관세 감축안에 대해 일부 국가들이 반대할 경우 이들 국가들은 관세 감축을 수행할 필요가 없는 대신 다른 나라의 관세 감축에 따른 혜택도 받지 못하게 된다는 것. 이 문제를 풀기 위해 WTO가 구성한 위원회에 패널로 참가하고 있는 피터 서더랜드 전 WTO 사무총장은 이와 관련해 “만장일치제를 포기한다고 해서 WTO 의제에 반대하는 국가들을 강제할 수는 없다”며 “만장일치제의 합리적인 변형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의사 결정 방식 변경에 대해 약소국 및 비정부기구(NGO)의 거센 반대가 예상되고 있어 시스템 변경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전망했다. 약소국들의 경우 우선적으로 WTO의 투명성을 요구하고 있어 이러한 시스템 변경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며, NGO들 역시 자신들의 입지가 약화될 것을 우려, 반대의 목소리를 높일 것이라는 것. WTO는 그러나 올해 말까지 시스템 정비를 마친 후 내년 초 공식적으로 회원국들에게 새로운 안을 제안한다는 방침이다.
WTO는 이와 함께 의사 결정이 보다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WTO에서 논의되는 문제를 보조금과 관세 문제 등으로 최소화시키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칸쿤회의의 싱가포르 이슈처럼 부차적인 문제들로 인해 핵심적인 사안에 대한 합의가 지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또 일부 약소국들의 경우 복잡한 세계무역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고, 이들에 대한 교육을 위해 WTO 직원들을 최고 두 배까지 늘리는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최윤석기자 yoep@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