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피플 인 이슈]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첫 3선 총리 부패 이미지 벗고 '경제회생' 이룰지 관심<br>성공한 CEO'에 대한 높은 기대심리로 선거 압승 일부 "능력보다 좌파에 대한 실망감 때문" 비판도 저성장 장기화·막대한 공공부채 해결등 과제 산적



오는 5월 이탈리아 역사상 처음으로 3선 총리에 오르는 우파 정치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72ㆍ사진)는 이명박 대통령과 닮은 점이 많다. 그가 기업인 출신이라는 점, 경제 살리기를 이슈로 선거에서 압승한 사실, 감세와 공공부문 지출 축소등의 공약에서 한국 선거에서와 유사성을 발견할수 있다. 이탈리아 국민들은 경제 살리기의 적임자로 패기를 앞세운 52세의 발터 벨트로니 전 로마 시장보다는 안정 속의 발전을 주장한 관록의 베를루스코니를 택했다.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중도우파연합은 315석의 선출직 상원에서 174석, 630석의 하원에서는 344석 등 상하 양원에서 과반 이상의 의석을 차지해 전임 로마노 프로디 총리와는 달리 ‘강한 정부’를 구성할 토대를 마련했다. 유권자들은 경제 난국 돌파를 위해 2년 만에 우파 정권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하지만 베를루수코니가 병든 이탈리아 경제를 살려내기에는 많은 난관이 놓여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전망에 따르면 이탈리아 경제는 올해 0.3%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에 2000년대 들어 지속된 저성장이 장기화할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2조5,000억원이 넘는 막대한 공공부채에서 국영 항공사 알리탈리아 경영 위기, 나폴리의 쓰레기 대란에 이르기까지 경제 현안이 산적해 있다. 또 그의 당선을 바라보는 대내외 시선은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는 부패로 얼룩진 고령의 정치인인데다, 지금보다 통치 여건이 훨씬 나왔던 1994~1995년, 2001~2006년에 두 번의 총리 재임 기간 동안에도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가 이번 총선에서 이긴 것도 그의 능력에 대한 신뢰라기보다는 재정적자폭을 줄이기 위해 세금을 올린 좌파정부가 중산층과 서민층에게 미운 털이 박힌 탓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는 이번 총선에서 내건 공공지출 축소, 세금감면, 인프라 개선, 연금 개혁 등의 공약은 좌파 진영의 공약과 거의 비슷하다. 일각에서는 우파 연합의 복잡한 구성이 향후 국정 운영에 갈등의 불씨가 될 소지도 있다고 지적한다. 우파연합은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전진이탈리아당과 파시스트당 후신인 전국연합을 합당해 만든 자유국민당에 지역주의 정당인 북부연맹과 자치운동이 가세해 탄생했다. 국제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의 알렉산더 코커벡 애널리스트는 “이번 선거는 군소 정당이 유명무실해지면서 양당제가 정착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이지만, 우파 연합 내 너무 많은 이견이 존재해 이를 하나로 묶는 작업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전국연합, 북부연맹 등이 외국인에 대해 적대적인 성향을 띠고 있는 등 보호주의 색채가 강하다는 점도 베를루스코니의 정치행보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난관을 극복하며 베를루스코니는 ‘성공한 기업가(CEO)형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유권자에게 심는 데 성공했다. 현지 언론들은 승리의 원동력으로 그의 ‘꿈을 파는 능력’에 주목했다. 자수성가형 CEO인 베를루스코니가 이탈리아를 성공의 길로 들어서게 할 것이라는 기대심리를 유권자들에게 불어넣었다는 것. 영국의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뇌물수수와 조세 포탈, 마피아 연루 등 베를루스코니에게 지워진 숱한 오점도 경제 회생이라는 국민의 열망을 꺽진 못했다”며 “이탈리아 국민들은 베를루스코니의 마술을 기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역설적으로 이런 국민들의 바람이 좌절될 경우 베를루스코니 정부도 위태롭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대목이다. 지난 1936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은행원 집안에서 태어난 베를루스코니는 밀라노국립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젊은 시절 한때 클럽에서 가수로 활동했으며, 1960년대 건설업에 진출해 성공의 기반을 다졌다. 그가 1978년 만든 지주회사 피닌베스트는 현재 자산가치가 120억달러에 이르며, 여기에는 전국적인 민영 TV 네트워크인 메디아셋을 비롯해 이탈리아의 최대 출판사 몬다도리, 금융서비스그룹 메디올라눔, 축구클럽 AC 밀란 등이 포함돼 있다. 그는 재력을 바탕으로 정치판에서도 승승 장구했다. 지난 1994년에 정계에 입문한 베를루스코니는 그 해 총선에서 전진이탈리아당을 이끌고 돌풍을 주도, 처음으로 총리에 올랐다. 하지만 북부연맹의 연정 탈퇴와 부패 스캔들로 중도하차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이후 2001년 총선에서 승리해 2006년까지 총리 임기 5년을 모두 채우는 저력을 과시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지난 63년간 1년에 한 번 꼴로 바뀔 만큼 취약하기로 유명하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는 젊은 층을 겨냥해 주름살을 펴는 성형수술과 머리카락 이식 수술을 받아 화제를 모았다. 정치인으로서 말 실수도 잦은 편이다. 선거 유세 때는 “검사들은 정신 감정을 받아야 한다” “우파 여성이 좌파 여성보다 더 섹시하다” 등의 발언으로 홍역을 치렀고 선거가 끝난후 스페인 여초(女超) 내각을 두고 “너무 핑크색이 강하다”고 훈수를 뒀다가 사과하는 해프닝을 빚었다. 지난 1990년 영화배우 출신 베로니카 라리오와 재혼해 세 자녀를 두었으며, 전처와의 사이에 두 아들이 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주요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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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이탈리아 밀라노 출생 ▲1961년 밀라노국립대학 법학과 졸업 ▲1960년대 아파트 건설 등 건설업 진출 ▲1973년 지역 케이블 업체 텔레밀라노 설립 ▲1978년 미디어 그룹 피닌베스트 설립 ▲1994년 전진이탈리아당 창당, 총선 승리로 첫 총리 취임 ▲1995년 부패 스캔들로 총리 사퇴 ▲2001~2006년 총선 승리로 두 번째 총리 재임 ▲2008년 4월 중도우파연합으로 총선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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