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히딩크가 줄수 없는 것

월드컵 열풍과 함께 '히딩크 경영학'이라는 것까지 나타나니 25년간 경영학을 공부하고 가르쳐온 입장에서 참 곤혹스럽다. 히딩크 감독의 리더십 성공요인을 잘 분석해 놓은 글들을 보면서 다행히 새로 더 공부할 필요는 없겠구나하며 안심했다. 축구라는 업종의 특성과 히딩크씨의 개인적 성향, 한국팀의 특성과 문화 정도의 특성변수를 빼면 교과서적인 경영이론과 한치도 다른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월드컵을 치르면서 히딩크 감독과 우리 대표팀 못지 않게 세계적으로 찬사를 받은 것은 붉은악마를 중심으로 한 우리의 거리응원단이었다. 세계 유수의 언론이 주목한 부분은 대표팀에 대한 순수하고 열광적인 애정, 상대팀에 대한 존중, 그리고 무엇보다도 흥겨운 자발성과 질서의식이었다. 자신들의 개성을 마음껏 발휘한 분장과 응원도구를 준비해 한 마음으로 즐기고, 잔치가 끝나면 주변의 쓰레기를 주워담는 모습은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감독이 이끄는 축구팀과 감독 없이 자유롭게 모여든 700만명의 응원단의 차이는 무엇일까? 11명의 베스트 멤버가 임무를 분담해 그라운드에 나서는 대표팀은 경영'의 대상인 조직이며, 전략과 전술, 기술과 규칙의 지배를 받는다. 그들에게는 승리라는 목표가 있고 팀의 목표를 위해 개인은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거리 응원단은 사실은 '단'이 아니다. 700만명의 개인이 특별한 자극에 비슷하게 반응하여 감동을 공유하고 축제를 즐기고자 모인 것뿐이다. 이러한 집단은 조직이 아니고, '경영'의 대상이 아니다. 이들의 개별적 행동이 모든 이의 눈에 감동적인 모습으로 비춰진다고 해서, 누군가가 그런 모습을 재현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울 수는 없는 것이다. 이들의 행동이 히딩크씨의 지도에 의한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정부나 언론, 또는 선의의 공공단체가 '질서'를 지키자고 계도를 한다고 해서 우리 사회의 다른 부분에까지 그 아름다움이 그냥 전파될 수 없다는 것이다. 복잡성 과학에서는 이렇게 개체들의 자발적 행동이 전체로서 "질서"를 가져오는 것이나 "혼돈(Chaos)"을 가져오는 현상을 창발(Emergence)이라 부르는데, 그 결과는 의도와 통제에 의하여 결정되지 않는다. 700만명의 거리응원단, 그리고 수천만의 한국인들이 세계곳곳에서 붉은 옷을 입고 젊은 선수들의 몸짓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했던 열광의 축제가 끝나가고 있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이를 국운융성의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거나, 국수적 애국주의와 획일성이 두렵다거나 하는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다. 거리응원단이 보여주는 질서가 창발의 결과로 누구의 작위도 아니었던 것처럼, 우리 사회의 고질적 문제들이 보여주는 혼돈도 누가 시켜서 고치거나 관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청소년과 어린이를 고통으로 몰아넣는 입시경쟁, 끝이 없는 정쟁과 부패의 사슬, 지역감정과 세대간 소통의 단절 같은 현상들은 역시 복잡계의 상호적응과정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에 대해서는 히딩크씨 같은 리더라도 답을 줄 수 없다. 그러나 700만 거리응원단은 왜 모이게 되었고, 왜 축제가 끝난 뒤 거리청소에 나섰을까를 생각해 보면 문제에 대한 전망은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거리에 나간 사람들은 대개 거리에서 다른 사람과 같이 교감하고 응원하는 것이 너무나 즐겁고, 흥분되는 경험일 것이라는 예상을 한 것이다. 그것은 TV화면을 보고 내린 결론일 수도 있고 친구들에게서 전해들은 이야기일 수도 있다. 어떤 이유든 이들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거리로 나갔다. 축제가 끝난 뒤 뒷청소는 즐거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의 흥겨운 놀이의 뒤끝이 깨끗하지 못하다는 말을 듣느니 조금의 수고를 들여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는 희생을 택하였다. 이러한 행동양식은 '모방과 예측'을 기초로 한 것이다. 이러한 자발성과 자존심에 기반을 둔 개인의 모방행동이 아름다운 700만의 질서라는 세계적 현상을 가져온 것이다. 세계를 놀라게 한 붉은 악마의 아름다움은 '조직'의 '경영'접근이 아니라 '복잡계'의 '창발'현상으로 보아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다행히 최근 시장이나 국가와 같은 거대한 복잡계의 움직임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경영학과 경제학에 복잡성 과학이 접목되기 시작하고 있다. 히딩크도 가르쳐 줄 수 없는 것, 대통령도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 근엄한 정답은 없다. 단 '각성한 개인'의 행동논리가 긍정적 결과를 자꾸 가져온다면(Positive Feedback) 모방은 더 가속될 것이다. 단기적 배타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보다 남을 배려하고, 원칙을 지켜 장기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개인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런 관찰은 이 나라에 사는 것을 즐겁게 한다. /이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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