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12월 24일] 불안 잠재울 공존의 정치

‘교수신문’에서 올해의 사자성어로 ‘호질기의(護疾忌医)’를 뽑았다. ‘호질기의’는 중국 북송시대 유학자 주돈이(周敦頤)가 ‘통서(通書)’에서 “자로(子路)는 자신의 잘못을 들으면 기뻐해 그 명성이 영원히 전해지게 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잘못이 있어도 다른 사람들이 바로잡아주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이는 마치 ‘병을 감싸 안아 숨기면서 의원을 기피해(護疾忌医) 자신의 몸을 망치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슬프구나!”라고 말한 데서 비롯됐다. 한국의 대학교수들이 호질기의를 2008년을 대표하는 사자성의로 선택한 것은 남의 충고를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는 독선과 아집의 사태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국민과의 대화와 소통에 태만했던 이명박 정부의 일방주의 정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지난 5월 서울 광화문을 참여의 광장으로 일으켜 세웠던 촛불집회도 기실 소통과 대화를 요구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많은 국민들은 소통의 열망, 대화의 소망을 갖고 광화문에 결집했지만 이명박 정부의 국민무시와 일방주의에 절망했다. 병이 있음에도 의원을 기피하는 아집과 독선의 정치는 쇠고기 수입파동에서 끝나지 않았다. 더 심각한 것은 9월 미국발 금융위기에 대한 정부의 대처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정부는 별 문제 없을거라 했다. 경제논잭 ‘미네르바’를 비롯한 많은 전문가들의 위기경고를 오히려 위기를 조장하는 것이라 매도했다. 주식과 펀드가 반토막나고 중소기업들이 줄도산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으며 수출시장에도 먹구름이 깔리는 위험한 상황이 펼쳐짐에도 정부는 곧 좋아질 것이라는 낙관적 독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보다 더 한 ‘호질기의’는 없다. 국민들의 우려와 전문가들의 충고를 모르쇠로 일관하다 더 이상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병이 깊어진 다음에야 우왕좌왕 일관성 없는 대처방안을 쏟아놓는 정부에 대해 국민들이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 위기의 시대일수록 정부는 더 큰 귀를 가져야 한다. 더 많이 대화하고 더 많이 경청해야 한다. ‘내가 옳으니 따라오라’는 식의 아집과 독선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정치적 안정을 기대하기 어렵다. 최근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예산전쟁이니 법안전쟁이니 하는 것들도 기실 대화와 소통이 단절된 한국정치의 안타까운 모습이다. 정부의 입장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야당과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식의 정치로는 국민들을 설득할 수 없다. 2008년 한 해를 보내는 국민들은 불안하다. 그리 유능하지 않지만 남의 말을 듣지 않으려 하는 이명박 정부가 불안하고 내년 3월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는 경제위기의 알 수 없는 영향에 기업들은 불안해 하고 있다. 공무원들은 끝없이 요동치는 정권교체의 파고가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불안해 한다. 경제위기의 불확실성 속에 정치적 사회적 불안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정부는 국민의 말, 전문가의 말에 그리 귀기울이지 않는 독선이 겁나는 것이다. “문학은 슬픔에 관한 것이고 정치는 불안에 관한 것이다”라고 말했던 이는 ‘가지 않은 길’을 쓴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였다. 문학이 우리의 슬픔을 위로하고 다독거리는 것이라면 정치는 국민의 불안을 해소하고 안정적 삶의 기반을 제공하는 데 그 존재이유가 있다. 모든 것이 불안한 상황에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우선 정치적 사회적 안정성을 부여하는 일이다. 국민의 말에 귀 기울이는 자세, 소통과 대화를 통해 국정운영의 기반을 잡아가는 자세에서 국민들은 안정감을 느끼고 신뢰할 수 있다. 불안한 시대, 국민들의 불안을 잠재울 열린 마음의 정치. 국민과 소통하고 대화하면서 자신의 허물이 있다면 고쳐나가는 넉넉한 여유의 정치,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그들의 의사를 존중하는 공존의 정치를 한 해를 보내면 기대해본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