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책과 세상] "대량살상무기 출현이 남성성을 약화시켰다"

■기사도에서 테러리즘까지 (리오 브로디 지음, 삼인 펴냄)

'그의 행위로 네 행위를 측정하라' 미국의 잡지 간행인들이 1943년 '라이프지에 실은 광고. 병사를 순교한 그리스도와 비교함으로써 후방에 영감을 주고자 했다. /사진제공=삼인출판사


전쟁을 통해 본 '남성다움'의 변천사
고대엔 전사 현대는 금융인이 더 각광
기원전 4세기 그리스 테베에 있었던 엘리트 군단 '테반 성단'은 동성 연인들로 구성된 군단 이었다. 고대 그리스어로 '테베의 신선한 아이들'이라는 뜻을 가진 이 군단은 전투에서 협심해 사력을 다해 싸울 수 있다는 판단 아래 동성애 커플로 조직됐다. 그리스뿐 아니라 다른 도시 국가들도 연인들을 전투에 같이 배치했다. 동성애 때문에 이들이 전사로서 부적격하거나 '남자답지 못해서' 무능하다고 여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무엇이 '남성'을 만드는가?'라는 질문에 '기사도에서 테러리즘까지'의 저자 리오 브로디는 '전쟁'을 제시한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역사로 볼 때 전쟁과 경쟁이 국가적 조명을 받을 때는 남성성의 윤곽이 뚜렷해지는 반면 전쟁이 없을 경우 남성성이 쇠퇴했다는 설명이다. 힘 좋은 노동자보다 책상 앞에 앉아있는 금융인이 더 각광받는 오늘날에서 볼 수 있듯 '남자다움'의 정의는 당대의 사회 문화적 요구에 따라 변해 왔다고 말한다. 전쟁이 남성을 만들어왔고 역으로 전쟁 역시 남성성의 변화와 더불어 진화하면서 전쟁과 남성성이 상호작용을 해 왔다는 것. 따라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남성적'이라는 개념도 자연적이고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19세기와 20세기 유럽의 관념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과거의 군대는 동성애가 금기시되는 지금의 군대와 달랐던 것처럼 절대 불변의 순수한 남성성 같은 것은 없다는 주장이다. 고대에 남성들은 전쟁을 남성이 되기 위한 필수적인 통과의례로 간주했다. 전쟁의 시련을 이겨 낸 자만이 전사이자 영웅이 될 수 있었고 이들이 한 사회의 중심적 존재이자 진정한 남성으로 여겨졌다. 중세에는 민족 간의 대립과 전쟁이 왕성하게 벌어졌다. 이때 등장한 '기사도'는 고대의 남성성에 대한 이해를 본질적으로 계승한다. 이에 비해 근대에는 기술의 발달과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인해 전쟁의 양상과 더불어 남성성도 대폭적으로 변화하게 된다. 전쟁 기술이 발전하고 잔인한 무기가 등장하면서 기존의 도덕적이고 명예에 기반을 둔 전쟁과 남성성의 결합은 무너지게 된다. 이런 변화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남성을 규정하는 것이 더 이상 전쟁과 전시 상황만이 아니라는 인식의 대두다. 기존의 전사적 남성성의 이미지 약화를 암시하는 대목이다. 이어 대량살상무기가 개발된 현대에는 민족 국가 개념이 약해지고 포스트 산업 사회로 옮아가면서 국가 간 전면전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 더 이상 과거 남성성에 영향을 끼쳤던 전쟁이 예전 같은 영향력을 갖기 어려울 것이라는 설명이다. 총 888쪽에 이르는 책은 7년간 수집했다는 자료를 모두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의지 때문에 다소 복잡하지만 오히려 방대한 자료들 덕분에 지루할 수 있는 역사서가 더 흥미롭게 느껴질 수도 있다. 3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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