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한국 원전 수출 플레이어가 없다

핀란드·사우디 등 대형 원전 수주전 코앞인데…



고위급 실무자 잇단 낙마에 공기업 사장 인사도 늦어져… UAE 등 추가사업 놓칠 판
경쟁국 '원전비리' 내세워 견제… 우리는 수주사령탑 몇달째 공석
중동 네트워크에 성패 달려… '개점휴업' 협상팀 재정비해 한국형 우수성 홍보 나서야


박근혜 대통령이 베트남 원자력발전소 수주에 팔을 걷어붙이고 핀란드ㆍ사우디아라비아 원전 등의 수주전도 본격화하고 있지만 정작 국내에서 원전수출 실무를 책임질 '플레이어'들이 사라지고 있다. 전 정권에서 아랍에미리트(UAE) 원전수출을 견인했던 고위급 실무자들은 원전비리 등과 맞물려 잇따라 낙마한 데 이어 원전수출을 지원하는 핵심 공기업 사장들의 인사까지 늦어지면서 한국형 원전수출팀이 사실상 해체된 형국이다.


21일 관계당국에 따르면 다음달 초 핀란드 원전의 복수협상자가 발표되고 연말부터 사우디ㆍ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 대형 원전발주가 줄줄이 이어진다.

이처럼 해외 곳곳에서 대형 원전의 수주전이 본격화할 예정인 가운데 한국 원전수출팀 부재에 따른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원전비리 문제를 매듭짓고 수주전에 다시 뛰어든다 해도 실무팀을 꾸리기가 어려워진 상황이다.

한국형 원전수출의 실무 컨트롤타워인 한국전력의 해외부사장 자리는 올해 들어서만 벌써 두번째 물갈이가 될 분위기다. UAE 원전수주를 진두지휘했던 변준연 전 한전 부사장은 밀양 송전탑 사태와 관련한 부적절한 발언으로 지난 5월 사퇴했고 후임인 한국수력원자력 출신 이종찬 부사장 역시 원전 납품비리 사건에 휘말려 최근 업무가 정지된 상태다.

이에 따라 한전 내부에서는 이희용 원전수출본부장을 제외하고는 UAE 원전수출을 담당했던 고위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원전수출을 지원하는 한수원과 한국전력기술 등의 수장 자리도 벌써 수개월째 공석 상태다. 한수원은 김균섭 전 사장이 6월 면직된 후 아직 적절한 후보자를 찾지 못하고 있고 한전기술도 안승규 사장 해임 이후 선임절차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현재 이들 공기업 내부에서 원전수출을 담당하는 고위직은 UAE 원전수출 등에 참여했던 경험이 없다. 한수원과 한전기술 등은 원전수출 과정에서 한국형 원전인 'APR1400'의 운영과 설계라는 핵심 역할을 하지만 아직 국내에서 터진 원전비리의 뒷수습에 급급한 모습이다.

문제는 이 같은 상황에서 전세계 원전 수주전이 점차 달아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 한수원이 올해 초 입찰한 핀란드 올킬로토 원전 4호기의 복수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이 다음달 초에 결과가 발표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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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통상자원부의 한 관계자는 "당초 이달 말 발표 되기로 예정됐던 핀란드 원전의 복수협상자 발표가 다음달 초로 연기됐다"고 밝혔다.

핀란드 원전 수주전에는 한수원과 프랑스 아레바, 일본 미츠비시, 일본 도시바, 미국 GEㆍ일본 히타치 컨소시엄 등 5개 업체가 참여했으며 핀란드 TVO사는 이들 가운데 복수 협상자를 내달 초 선정한 후 내년 초까지 최종 협상자를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지난 5월 터키 원전을 수주한 일본은 무려 3개 업체가 이번 수주전에 뛰어들 정도로 왕성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원전 업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한수원이 복수 협상자로 선정이 된다면 그때부터는 정말 정부와 공기업 수장들이 모두 매달려 수주전을 펼쳐야 하는 전쟁이 시작되는데, 현재와 같은 분위기에서 그 같은 역할이 제대로 수행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우리 원전 수출의 성지인 UAE 원전 사업과 관련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는 올해까지 UAE 원전의 추가 사업인 2백억 달러 규모의 '운영정비 및 지원계약'을 체결한다고 밝혔지만 아직까지 계약 일정이 확정되지 않고 있다.

여기에 최근 검찰 수사에서 국내 원전 부품 납품 비리가 UAE 원전 등과도 맞물려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UAE측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했던 고위급 실무자들이 줄줄이 퇴출되면서 UAE 원전 사업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UAE원전 이후 전세계에서 가장 사업성이 좋은 것으로 평가 받고 있는 사우디 원전 수주전도 한국 입장에서는 점차 힘든 싸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자본력이 탄탄한 사우디는 오는 2030년까지 총 1,700만kW가량의 전력을 원전으로 충당할 계획이며 내년에 원전 2기 가량을 먼저 발주하고 2022년부터 운영을 시작할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ㆍ러시아 등 전세계가 사우디 원전 수주전에 뛰어들고 있는 가운데, 경쟁국들은 최근 원전 비리 사태 등을 집중 부각시키며 한국을 견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UAE원전 사업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중동 국가와의 원전 수출 사업은 네트워크를 얼마나 제대로 쌓고 있느냐에 성패가 달려있다"며 "서둘러 한국 원전 수출팀을 재정비하고 한국형 원전의 우수성을 전세계에 알리는데 초점을 맞춰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다음달 박 대통령의 베트남 순방을 계기로 베트남 원전 수주전을 본격 진행할 방침이다. 베트남은 현재 5~6호기 원전 건설을 위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한국측과 함께 진행하고 있으며 수주 시점은 2015년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윤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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