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인터뷰] 김혜정 혜정박물관장 "고지도에 기록된 우리역사 전세계 알릴 것"

비추미대상 특별상 받은


"역사 왜곡으로 인한 국가 간 분쟁에 사료(史料)만큼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고지도에 기록된 우리 역사를 전세계에 알리겠습니다." 40여년간 5만점이 넘는 고서를 수집하고 제주도ㆍ몽골ㆍ베트남 등에 어린이를 위한 사회복지법인을 설립, 운영하고 있는 김혜정(65ㆍ사진) 경희대 혜정박물관장은 최근 삼성생명 공익재단의 비추미여성대상 특별상 수상소감을 이같이 밝혔다. 다양한 명함 중 그에게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혜정박물관장과 아가의집 혜정원 이사장이다. 혜정박물관은 독도 분쟁, 동북공정 등 역사 왜곡사건이 터질 때면 주목받는 사료가 소장돼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일본 지도 전문가 다카하시 가게야쓰(高橋景保)가 동해를 조선해로 명기하고 독도를 표시한 신정만국전도(新訂萬國全圖)다. 김 관장은 40여년간 100여개국을 다니며 사비를 털어 수집한 고지도 3,000여점과 사료 5만여점을 지난 2002년 경희대에 기증했다. 소장자료 중 1,200년 전 가죽에 그린 잉카지도, 1595년 벨기에에서 제작된 일본 열도, 한반도의 형태가 정확하게 그려진 1655년 중국지도첩 등은 세계적으로도 귀중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2008년에는 18세기 후반 제작된 경기도ㆍ강원도ㆍ함경남도ㆍ함경북도 지도 4점이 보물 1,598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고지도 300여점을 소장하고 있는 영국의 대영박물관, 140여점을 소장한 미국 남가주대 등을 뛰어넘는 세계 최대 규모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고서 기록을 근거로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 그는 한국ㆍ일본ㆍ몽골 등에서 20여차례 고지도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김 관장이 고지도와 어린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두 조합을 인생의 목표로 내건 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고마자와(駒澤)대 동양사학과 교수였던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칭찬받는 사람이 돼라'고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말씀하셨죠. 잔소리로 듣고 지나쳤던 그 말은 인생의 모토가 됐고 여자로서 칭찬받는 사람이 되기 위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 '사회의 어머니'였습니다." 제일교포 3세로 한국 국적을 유지해온 그가 귀향한 것은 197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취임식에 민단 대표로 참석한 것이 계기가 됐다. "대학 졸업 후 도쿄에 창업한 간다(神田)통상마케팅리서치가 꽤 잘나간 덕에 재일교포를 대표한 축하사절단의 일원으로 고국을 방문했죠. 그때 따뜻함을 절감했어요. 잘사는 계모(일본)의 품은 늘 차가웠는데 가난했던 엄마(한국)의 품이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었죠. 일본에서 늘 느꼈던 공허함이 채워지는 듯했어요." '사회의 어머니'가 되기 위해 고아원을 설립하겠다는 뜻을 30대에 일찌감치 세운 그는 외할머니의 고향에서 뜻을 펼치기 시작했다. "제주도에서의 환대는 평생 느껴보지 못한 감동이었어요. 축하사절단 일정이 끝나고 제주도에 갔을 때 지체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필요하다는 지역주민들의 요청으로 사업에 착수했죠. 준비하는 동안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과 '하고 싶다'는 의욕이 저를 이끌었어요." 교리쓰(共立)여대 2학년 때부터 취미로 모으기 시작한 고서는 1985년 설립한 지체장애인 보호시설인 혜정원을 운영하면서 더욱 늘어났다. 학교 공부에 별다른 흥미가 없어 시간만 나면 도쿄 간다 고서점가에 들른 그는 1600년대 유럽 고지도의 아름다움에 빠져 그 길로 돈만 생기면 무작정 고지도를 사들였다. 40대부터는 한국이 표기된 고지도마다 동해 표기가 다른 점이 눈에 들어와 아시아ㆍ한국 지도 위주로 수집했다. "소장자료의 가치는 1,000억엔이 넘고 지금도 수집할 만한 고서가 있다는 연락을 받으면 곧바로 짐을 꾸린다"는 그에게 어디서 돈을 마련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개인적인 재산은 물론 일본에서 사업으로 성공한 동생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고서 매입에 필요한 자금을 요청하기 위해 전화를 자주 하자 동생들이 이제는 내 전화를 받기 꺼려할 정도"라면서 웃었다. 고문서 수집으로 역사의식이 강해졌다는 그는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 세계고지도박물관 건립이라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기업의 문화사업 후원을 독려하는 김 관장은 "공장은 부도가 나 망할 수 있지만 문화는 망하지 않는다"며 "나라를 잃어버린 과거를 되새기며 기업들이 좀 더 우리 문화유산 보존에 힘썼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김 관장은 고문서를 찾으러 자주 들렀던 몽골ㆍ베트남 등에도 고아원을 설립하고 운영을 지원해왔다. 그의 봉사활동이 몽골 정부에 알려져 최고문화훈장(1991), 최고지식인훈장(2010)에 이어 최근에는 외국인에게 주는 최고 훈장인 북극성훈장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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