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사회는 합법과 불법의 구분이 잘 안 될 정도로 혼란스럽다.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X파일이나 최근 불거진 대선후보의 개인정보유출 문제가 산 증거다. 항간에는 내용의 진위가 중요하지 취득과정이 무슨 문제냐는 주장까지 나온다. 심지어 도둑을 잡는데 웬 추적경로 시비냐는 식의 반론까지 나오면서 아예 개인정보 공개를 강제하자는 논의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는 지극히 위험천만한 반민주ㆍ반법치주의 논법이 아닐 수 없다. 범인만 잡으면 되지 과정이 무슨 문제냐는 식의 전근대적 사고와 다름 없다. 고문을 했건 가혹수사를 했건 범인만 잡을 수 있다면 정당하다는 구시대의 반인권적 태도와 같은 셈이다.
잘 알다시피 민주 법치주의는 결과만능이 아니라 정당한 과정을 핵심으로 하는 적법절차가 생명이다. 정당한 합법적 절차에 의한 정의의 실현만이 올바른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 목적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으면 이는 반민주적 독재나 전체주의로 가는 길인 까닭이다.
흉악범이나 살인범조차도 적법절차에 의한 심판이 요구되고 불법도청이나 고문, 함정수사로 얻은 자료는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할 수 없고 그 존재가치를 부정함이 법치의 대원칙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도청이나 첩자, 미행 등을 통한 정보수집으로 죄를 탐지하고 처벌함은 과거 나치나 소비에트 체제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닌가. 그래서 모든 문명국가의 법 제도는 적법절차에 따른 합법적 수단에 의한 자료만 활용하도록 제한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그 어떤 권리보다 철저히 보장돼야 할 최고의 기본권으로 헌법상 보장된 핵심적 가치다. 그런데도 이를 그저 대수롭지 않은 사항처럼 보거나 알 권리라는 이름으로 섣불리 무시할 수 있는 것인 양 취급함은 심히 위태로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과거 권위주의 독재 잔재를 극복하고 민주주의 완성을 운위하는 이 시대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올바로 존중하는 진정한 법치주의를 추구해야 하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 새로운 민주화를 지향하는 우리나라에서 오히려 적법절차와 합법성을 무시하는 발언이 이토록 난무함은 어찌된 일인가. 법과 이성이 지배해야 할 시기에 또 다시 감정과 충동이 앞지르는 듯하여 걱정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