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현 여신규정 허수아비 입증/한보 대출 제도적 문제점은

◎동일인 여신한도­신탁계정 이용땐 제재못해/은감원 감독방식­사후처리만… 예방책 전무/신용평가제도­한보철강 3년간 같은 평가한보철강 부도로 인한 영향이 전체 경제에 일파만파의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어떻게 자본금 9백억원의 기업에 금융권에서 5조원이 넘는 자금을 쏟아 부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대부분의 의혹은 주로 정치권으로부터의 외압설로 압축되고 있다. 그러나 은행들이 외압에 의해 한보철강에 대해 대규모 여신을 지원하고자 하더라도 제도나 규정을 위반하면서까지 이루어질 수는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행 여신관련제도나 규정이 결국은 허수아비일뿐이라는 지적이다. ◆동일인 여신한도제도=현재 은행법상 동일인 여신한도는 동일한 개인 또는 법인에 대한 대출규모가 금융기관 자기자본의 15%를 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지급보증의 경우에는 자기자본의 30%를 넘지 못한다. 그러나 이는 은행법의 적용을 받는 은행계정에 대한 규정일 뿐이고 재경원의 통제하에 있는 신탁계정은 적용을 받지 않는다. 따라서 은행들이 신탁대출을 이용하면 동일인 여신한도를 넘어서는 거액대출이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지난 23일 현재 제일은행의 한보철강 대출금은 은행계정 2천7백57억원과 신탁계정 2천6백84억원으로 총 5천4백41억원에 달한다. 지난해말 현재 제일은행의 자기자본은 1조8천5백억원 가량으로 추산돼 은행계정 대출금만을 감안하면 동일인 여신한도를 넘지 않은 셈이다. 그러나 신탁대출까지 감안하면 동일인 여신한도를 크게 넘어선다. 이는 조흥은행과 제일은행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편중여신의 억제라는 동일인 여신한도제도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신탁계정에 대해서도 이 규정을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은감원 감독방식=은행감독원은 한보철강에 대한 일부 은행들의 거액 대출과 관련, 이들 여신이 모두 규정에 맞게 이루어진 정상여신이기 때문에 정기검사에서도 아무런 지적사항이 없었고 다만 여신규모가 큰 점을 감안, 여신관리에 만전을 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코멘트성 조언을 했다고 밝혔다. 이는 현행 은감원의 은행감독방식이 지극히 사후적, 소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은행의 한 관계자는 『은감원이 은행의 여신담당 임원들에게 한보철강에 대한 여신과 관련해 경고성 조언만 했더라도 20개 은행이 한보철강에 일사분란하게 대출을 해주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현재 은감원의 은행감독방식이 사후적인 지적위주, 그리고 규정에만 어긋나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식이기 때문에 이번 한보철강 부도와 같은 사건을 사전에 예방할 방법은 전무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미 한보철강의 자금악화설이 파다하게 퍼졌던 지난해 12월 은감원이 수시검사를 통해 부실징후를 파악하고 이를 은행들에 경고만 했어도 이 정도의 파장은 일지 않았을 것이라는게 금융계 주변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그러나 은감원의 이같은 소극적인 대응은 최근 항간에 거론되는 정치권의 「외압」이라는 설에 더욱 무게를 실어줌은 물론이다. ◆신용평가=국내 은행들은 기업에 대한 여신심사에서 자체적인 신용평가모델을 활용하지만 상당부분을 신용평가기관의 평가에 의존한다. 더구나 대기업의 경우에는 전문기관의 평가가 거의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게 정설이다. 그러나 이들 기관의 평가결과의 신빙성에 의문이 가는 경우가 많다는게 금융계 관계자의 지적이다. 이번 한보철강의 경우만해도 한국기업평가와 한국신용평가는 지난 94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동안 줄곧 「트리플B(BBB)마이너스」의 평가를 내렸다. 지난 94년말 한보철강의 순이익증가율이 마이너스 62.3%를 기록하고 95년에 적자로 전환됐으며 지난해에도 적자가 지속됐다. 부채비율도 94년말의 5백34%, 95년의 8백45%, 지난해 6월말에는 1천8백93%로 급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보철강에 대한 신용평가는 전혀 변하지 않은 것이다. 더구나 한보철강은 2개이상의 신용평가기관으로부터 트리플B 등급을 받음으로써 무보증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는 자격을 받아 2천4백억원 규모의 무보증 회사채를 발행, 이를 매입한 금융기관들이 고스란히 돈을 떼이게 됐다. 엉터리 신용평가가 대규모 부실여신의 발생을 부추겼다는 지적이다.<김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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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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