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청 앞과 청계천 광장에서부터 광화문 네거리로 넘쳐흐르는 대규모 촛불시위대의 위세는 이제 청와대와 정치권은 물론이고 나라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대한민국이 이 정도의 민중시위로 무너지지야 않겠지만 이미 세계화된 국제 경제체제 속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는 우리의 역사적 사명에 큰 차질이 빚어질까 심각하게 걱정이 앞선다.
한달여 전 촛불시위가 처음 시작될 때만 해도 재미교포와 미국인들은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우리 국민들이 냉철하게 이해해 자연히 시위를 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위의 규모는 더 커졌고 그 대상도 미국 쇠고기 수입 재협상뿐만 아니라 공기업 민영화 반대와 100일이 겨우 지난 새 정권의 퇴진까지 요구하는 잡다한 목적의 민중운동으로 변질돼가는 추세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이러한 대규모 촛불시위가 청와대와 정치권뿐만 아니라 지성인을 포함한 여론 주도층까지도 주눅들게 하는 듯한 조짐을 보인다는 현실이다. 야당 정객들이야 기회주의적으로 지금의 위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새삼스러울 것이 없겠으나 청와대와 정부 지도자들까지도 시위대에 겁먹은 듯한 태도를 보인 것이 더 걱정이다.
벌써부터 대선 공약이었던 공기업 민영화를 보류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고 대운하 사업은 여론에 몰려 포기하는 것 같고 고유가 대책이라고 엄청난 재정지원을 약속하는 등 대선 기간 때 국민의 기대와는 상반된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으니 촛불시위의 위력이 점차 정부정책의 왜곡으로 유도되는 것 같다.
이런 때일수록 참다운 지도자와 지성인들은 비록 돌멩이를 맞을 각오를 하고서라도 바른말은 해야 하는데 많이 주눅 들고 있다는 인상이다. 서울 장안을 뒤덮은 촛불시위대가 청와대와 여의도 정객들을 겁먹게 하는지는 몰라도 이번의 대규모 시위는 전세계의 말 없는 조롱거리가 돼 결국 세계적인 수치를 우리 스스로에게 둘러씌우고 있다는 현실을 국민들은 알아야 한다.
며칠 전 워싱턴포스트 일면에 실린 “분노의 불길이 서울에서 타오른다”는 제목의 커다란 천연색 사진은 촛불시위자들에게는 커다란 승리처럼 보이겠으나 사실 내용을 읽어보면 음식 위생에 관한 한 미국의 국민들과 여러 수입국 국민들이 즐기는 쇠고기를 못 먹겠다고 수입을 금지시키라는 우리 한국인들의 태도는 생떼요, 국제적 무식의 절정으로 인식되고 있다. 캐나다의 한 네티즌의 조롱처럼 세계는 지금 우리나라의 대규모 촛불시위를 집단 히스테리 현상으로 단정하고 있다.
우리들이 아프리카 수단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중 대학살이나 중국 정부의 티베트인 압제정책을 규탄하며 이런 촛불시위를 열고 있다면 전 세계는 조롱대신 존경심을 보이고 우리나라 국격도 그만큼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미국산 쇠고기가 마치 독약이나 된 듯이 어린 초등학생부터 직장인, 가정주부들까지 촛불을 들고 반대하고 나서는 이 현상을 한국의 정치가들은 겁이 나서 미사여구로 정당화시키려고 애쓰고 있으나 분명히 이것은 우리가 실은 얼마나 우매하고 국제감각이 부족한 후진국인가를 전세계에 광고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 과연 우리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놓고 이처럼 국력을 소모하고 있을 한가한 형편에 있는가. 국제유가는 배럴당 140달러에 육박해 세계 5위의 원유수입국인 우리나라의 경상수지 적자를 더욱 부채질하고, 천정부지로 올라간 기름 값에 화물연대 파업으로 물류대란이 우려되고, 레미콘과 덤프트럭 운전사들의 파업으로 전국의 건설 공사장이 올스톱의 위기에 빠져 있지 않은가.
사오정ㆍ오륙도도 부족해 이태백ㆍ이구백으로 젊고 똑똑한 우리 젊은이들이 청년백수로 허송세월하고 있다. 200만명에 이른 남성 무직 가장들의 비통과 서러움뿐만 아니라 서프프라임 모기지 금융위기로 세계경제가 더욱 어려워져 우리나라의 수출환경도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우리가 미국에서 팔고 있는 연 50만여대의 자동차를 위시해 어렵게 해외에 수출을 해서 그래도 이 정도로 견뎌오고 있는데 멀쩡한 미국산 쇠고기를 구실삼아 생떼를 부리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이 너무도 허무맹랑하고 이기적이고 근시안적이라고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 나아간다면 선진화의 꿈은 아예 잊어버리고 머지않아 꽃 같은 우리 젊은이들이 일터를 찾아 중국으로 대거 달려가는 날을 맞이할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