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구조조정의 비용법칙

지난 1980년대 초반의 일이다. 싱가포르의 리콴유 정부는 느닷없이 고임금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당시 싱가포르는 고성장을 구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성장이 반갑기는 했지만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노동력부족과 임금상승에 뒤따랐다. 임금억제를 통해 전통산업을 살릴 것인가 아니면 고부가산업으로 갈 것인가의 기로에 선 것이다. 그러나 싱가포르 정부는 후자를 택했다. 일시적 고통을 감내하고 경제구조의 선진화를 이뤄냈다. 고임금 통해 경제구도 고도화 저축은행 부실, 건설업의 위기, 가계부채 등 우리경제의 구조적 문제들이 하나 둘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건설업의 경우 대기업계열의 중대형 업체들이 잇달아 부도위기에 몰리면서 연쇄부도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건설업의 위기는 금융부실과 맞물려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 같은 문제들이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다. 오랜 기간 고도성장 과정에서 고착된 부동산본위 경제구조가 대내외 여건변화에 맞게 구조조정을 하지 못한 결과일 뿐이다. 글로벌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정부의 과감한 지원우산덕분에 잠시 시간이 연장됐을 뿐이다. 아직 부동산 '불패신화'가 깨졌다고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전성기를 지난 것은 확실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대충 짚어봐도 이 같은 진단은 쉽게 이해된다. 주택을 비롯한 부동산의 수요와 공급의 틀 자체에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 고성장시대가 막을 내리고 인구가 정체기에 들어서면서 부동산에 대한 '광적인 수요' 가 실종됐다. 질 좋은 일자리가 부족하고 소득이 정체되면서 유효수요 가체가 부족한데다 엄두가 안 나는 부동산가격 때문에 아예 주택구입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 요즘 세태다. 미분양 아파트가 쌓인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 건설경기를 살리기 위한 정부의 역할도 한계를 맞고 있다. 한꺼번에 수십만명을 수용하는 신도시와 공업단지 등 대규모 공공사업의 필요성도 줄었지만 막대한 재정적자 등을 감안할 때 그럴 형편도 못 된다. 최대 발주처인 토지주택공사는 벌여놓은 사업조차 감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4대강 사업이 강행되고 있지만 토목공사의 한계를 지니고 있는데다 그나마 거의 마무리단계에 있다. 도로를 비롯한 사회간접자본과 공공시설을 중심으로 민간투자사업들이 진행되고 있으나 건설경기를 떠받치기에는 역부족이다. 글로벌 불확실성과 중동의 정정불안이 지속됨에 따라 잘 나가던 해외건설도 주춤하고 있다. 시간 끌수록 커지는 부담 건설업은 고도성장기의 최대 수혜업종이다. GDP의 15%를 넘나들 정도로 국민경제와 고용 등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GDP비중이 대개 6-7%에 불과한 선진국들과 비교해 두 배 이상 높다. 문제는 부동산에 기초하는 이 같은 기형적인 산업구조를 지탱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여건변화에 맞는 구조조정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구조조정은 크게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는 거품이 폭발해 일시적으로 구조조정이 이뤄지는 경우이고, 하나는 정부가 개입해 점진적으로 조정해나가는 방식이다. 전자는 단기적으로 충격은 크지만 즉각적인 효과를 거두는 반면에 단계적인 방식은 대개 현상유지를 위해 구조조정을 지연시켜 결과적으로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된다. 시간을 끌수록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이 구조조정의 비용법칙이기 때문이다. 어렵지만 버티면 언제가 다시 좋은 세월이 찾아올 것이라는 막연한 환성에서 벗어나는 것이 고성장시대가 낳은 기형적인 경제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차적인 과제다. 경제구조 고도화를 위해 싱가포르가 선택한 과감한 발상전환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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