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합병(M&A)은 이제 익숙한 경제용어 중 하나가 됐다. 국내에서 M&A가 활성화된 계기는 역설적이지만 외환위기가 촉발한 부실 기업의 양산이었다. 외환위기 당시 국내에 진출한 해외 자본들은 부실 기업에 대한 M&A 투자로도 고수익을 올릴 수 있음을 보여준 바 있다. 그 이후 국내 기업들도 법정관리기업 인수 등의 각종 M&A를 활발하게 진행하면서 M&A는 일상적인 경영 수단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선진국 기업들이 지닌 풍부한 경험과 투자기법의 완성도와 비교하면 국내 기업의 M&A 수행 역량은 아직 부족하다.
여전히 소극적이고 반감 강해
더구나 최근에는 선진국 자본이나 국내 기업간의 M&A에만 익숙한 국내 시장에 중국ㆍ인도 기업 등 신흥시장 기업들이 참여한 M&A도 늘어나면서 국내 경제주체들이 M&A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태도에 일정한 변화와 인식의 전환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첫째, 국내 기업들은 글로벌 M&A에 대해 여전히 소극적이다. 오히려 중국ㆍ인도 기업들의 글로벌 M&A 참여도는 지난 2003년 이후 수백 건에 이를 만큼 크게 활성화됐다. IT산업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IBM의 PC사업 부문이 중국 렌샹에 인수됐고 싱가포르의 낫스틸은 인도 타타그룹을 새 주인으로 맞았다. 한국 기업도 예외는 아니어서 쌍용자동차는 상하이자동차가, 대우의 상용차 부문은 타타그룹이 인수했다. 이에 반해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 M&A 참여도는 여전히 미진하다. 오히려 대우그룹의 프랑스 톰슨의 가전 부문 인수 시도나 LG의 미국 제니스 인수 사례처럼 과거에 더 적극성을 보였다.
둘째, 투자 대상에 대한 국내 기업들의 편식 성향이 여전하다. 선진국 기업들은 이미 1900년대 초부터 수평ㆍ수직적 결합으로서의 M&A를 경험했다. 심지어 중국 기업들조차 국내 기업에 선행해 철광ㆍ에너지ㆍ비철금속 등 천연자원부터 선진기술 보유 기업들까지 대상을 가리지 않고 잡식성의 합종연횡을 실행하고 있다. 이에 반해 국내 기업들의 투자 대상 다변화 움직임은 여전히 미미하며 일부 종합상사나 국영기업들의 석유ㆍ가스 자원에 대한 직접투자가 대부분인 실정이다.
셋째, 적대적 M&A에 대한 반감이 지나치게 강하다. 적대적 M&A는 경영 효율성의 극대화를 위해 주주로서의 권리 행사를 동원하는 M&A 기법이다. 따라서 시장경제에서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M&A 투자방법 중 하나이다. 물론 모든 적대적 시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러나 미도파 인수 시도 당시 기업들의 반발 분위기나 평등 지향적 여론 등에서 나타나는 한국적 특성은 적대적 M&A 자체를 부정적으로 여기게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넷째, 중국ㆍ인도 등 신흥시장 기업들이 국내 기업을 M&A하는 데 대한 우려가 지나치다. 부족한 역량 보완이나 기술 획득, 시장 장악이라는 목적은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인수주체가 단지 선진국 기업이 아니라는 이유로 기술이나 인적 자원의 유출 등에 대한 우려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이런 점은 과거 대우그룹의 톰슨사 인수 시도가 프랑스 노조의 반발로 좌절된 경우와 유사해 보여 흥미롭다.
경제주체들 인식전환 필요
그런데 선진국 기업이 신흥시장 기업보다 더 도덕적이라거나 기술유출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는 없다. 차라리 우려 사항들을 제도적 장치로 견제하고 M&A를 추진해 기업 존속을 지원하는 것이 M&A 무산에 따른 기업 해체보다 나을 것이다.
국내 시장에서 나타나는 특징들에도 불구하고 정작 M&A 자체는 우호적이든 적대적이든, 대상 지역이나 기업을 불문하고 정상적인 투자기법 중 하나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따라서 본래 목적인 기업 경영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유연한 접근법을 가지고 M&A를 평가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