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과의 소통에서 학제 간 교류의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정부 지원으로 시작한 '조선기록문화와 법고창신(法古創新)의 한국학' 프로젝트의 실무를 총괄하는 황재문(42ㆍ사진) 교수는 일반 시민과의 학술적 소통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 2006년 서울대 규장각과 한국문화연구소가 통합돼 탄생한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은 2008년부터 관악구청과 공동으로 '규장각 금요시민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따분하다고 여기기 쉬웠던 역사ㆍ고문학 등 학술연구에 재미를 가미해 인기가 높다. 황 교수는 "역사와 고문학에 관심이 많은 50대 이상 시민들이 신청하고 출석률도 80%가 넘는다"며 "이제는 인터넷에 수강생(120명)을 모집하면 한 시간도 안돼 마감될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고 자랑했다. 12명의 교수진이 머리를 맞대고 주제를 선정하고 규장각 소장본을 비롯해 다양한 사료를 찾아 퍼즐을 맞춰가듯이 구성한 교재로 14주간 진행되는 고품격 강의는 시민들의 학구열을 충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는 "학자들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기록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시각으로 기록을 해석하려고 노력한다"며 "시민강좌를 하면서 일반인의 관심사를 이해하는 기회가 돼 연구실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연구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전공이 다른 연구자들끼리 의견 조율이 쉽지 않은데 시민강좌를 위해 한목소리를 내게 돼 타 전공자들을 이해하게 되고 소통도 더욱 활기를 띠게 됐다"며 "학제 간 연구라는 기대하지 못했던 성과를 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강좌의 결과물은 인문교양서인 '규장각 교양총서'로 재가공돼 탄생한다. '조선국왕의 일생''조선양반의 일생''조선여성의 일생' 등 현재 5권이 출간돼 독자들의 호평을 얻고 있다. 출판사인 글항아리에 따르면 '조선국왕의 일생'은 1만부 이상 판매됐으며 나머지도 고른 판매를 보이고 있다. 인문서 1만부 이상 판매는 베스트셀러로 손색이 없다. 지난 학기 주제였던 '세상사람의 조선여행'은 오는 12월, 이번 학기 주제인 '조선사람의 조선여행'은 내년 초에 출간 예정이다. 황 교수는 "논문을 쓰고 나면 저자ㆍ심사자ㆍ토론자ㆍ후속연구자 등이 읽고 마는데 인문교양서로 출간하면 독자의 범위가 넓어져 학자로서는 즐거운 일"이라며 "책이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시민강좌를 통한 지속적인 피드백의 성과"라고 자부했다. 또 "그동안 정부 주도하에 우리 기록물의 디지털화를 위한 사업이 많았지만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주역이었고 연구자들은 대부분 자문 등 잔소리하는 사람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꾸준한 시민강좌, 인문서 출간 등 법고창신의 정신을 실천하면서 디지털콘텐츠산업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국학연구원은 저술활동 외에 매년 전시회도 개최한다. 올해는 대동여지도 간행 150주년 기념 특별전인 '조선을 그리다 조선을 만나다'가 23일 서울대 규장각에서 개막해 12월17일까지 열린다. 대동여지도의 원본을 비롯해 조선시대와 근현대 여행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이색전시다. 황 교수는 "과거에는 규장각 소장품만으로 전시를 꾸몄는데 이번에는 내용을 더 충실하게 꾸미기 위해 외부 소장자들의 도움을 얻었다"며 "역시 대중과의 소통을 위한 시도와 노력"이라며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