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칼로 그린 그림 그 속에 깃든 지독한 아름다움

오윤석 개인전 30일까지

'히든 메모리즈 하트' /사진제공=아트사이드갤러리

아침에 눈 뜨면 그는 칼부터 집어든다. 칼로 그림을 그리는, 일명 '칼 드로잉'의 화가 오윤석(43)이다.


매일 아침의 첫 작업은 책상 위 폭 1m 크기 종이에 '반야심경' 26자를 적고 칼로 도려내는 '히든 메모리즈 260'. 부처님의 핵심 지혜와 마음이 담겨있는 총 260자의 반야심경을 고난한 예술과정을 통해 돌아보는 작업이다. 한 시간 이상 꼬박 칼질을 하면 겨우 손바닥만큼 문양이 나타난다. 글씨 뿐 아니라 경문(經文)이 뿜어내는 기운을 상징하는 무늬까지 새겼더니 종이는 마치 고급 레이스처럼 가볍고 투명해졌다. 26자씩 10장을 만드는 중인데 지난 2년 반 동안 5장을 완성했다.

관련기사



통의동 아트사이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개인전에서 '히든 메모리즈 260'의 제작과정을 설치작품으로 만날 수 있다. 작품 옆에는 그간 도려낸 손톱보다 작은 종이조각들이 수북하다. 일일이 칼로 도려낸 조각들이라 생각하면 징글징글할 정도다. 마치 머리카락 굵기의 가는 붓으로 세밀화를 그리고 불경을 적던 '사경(寫經) 수행'을 연상하게 한다. 오 작가는 "내 작업은 자기 수양의 한 방법"이라며 "한 작품에 숱한 시간과 노동을 들이는 과정 자체가 예술적 치유이고 수양"이라고 말한다. 한국의 단색화가 단일한 색조 보다도 반복적 행위로 사람과 그림이 하나됨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오윤석은 한국 단색화의 막내 작가로 평가받을 만하다.

그가 굳이 칼을 쓰는 이유는 긴장과 해체를 위해서다. 칼 잡는 손가락에 굳은 살과 물집 가실 날 없다는 작가는 "요리사든 칼잡이든 칼은 긴장하게 만드는 도구"라며 "작가는 원래 수행자"라고 강조한다. 덧붙여 "칼로 해체된 종이 위에 해체된 글씨들이 적혀가지만 그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히든 메모리즈'의 경우 낱장은 읽을 수 있으나 이들을 포갠 채 전시했기 때문에 관람객은 그 글씨를 읽을 수 없다. 무엇을 그렸냐 보다 어떻게 그렸느냐에 주목하게 만들고, 관객 스스로 무엇을 보느냐 보다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되묻는 작품이다.

신작은 얇게 도려낸 종이를 일일이 손으로 꼬아 세우고 그 끝에 먹을 묻히거나 색을 입히는 방식으로 선보였다. 타고 남은 초 심지가 수백 개 돋아난 것 같다. 화면의 반짝임과 색채가 어우러져 아름답지만 그 지독한 아름다움 너머에 손거스러미가 잔뜩 일어난 듯한 고통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그는 또다시 칼질하고 한지를 꼰다. 그게 그림이다. 전시는 30일까지.(02)725-1020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