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정부, 자동차 연비까지 법원 판결에 떠넘기나

정부가 26일 자동차 연비 검증기준과 제재 주체를 단일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중요한 소비자 보호 방안에는 손을 놓고 있다. 자동차관리법상 정부가 연비를 부풀린 자동차 업체에 소비자보상명령을 할 수 있는 근거가 없으니 소비자 스스로 소송을 통해 보상을 받으라고 할 뿐이다. 그렇다면 연비 검증 단일화는 왜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미국은 정부가 기업과 소비자를 중재하고 해결책까지 함께 내놓는데 우리 정부는 거의 책임방기 수준이다. 연비를 부풀린 업체에 얼마 안 되는 과징금을 부과하겠다는 게 전부다.


제조업체 친화적인 산업통상자원부는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정부가 안전과 무관한 연비 문제로 업체에 소비자보상명령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지 않고 있다며 딴소리만 한다. 어떤 소비자보호 강화 장치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인지도 밝히지 않았다. 제조사가 자발적으로 보상하거나 소비자들이 집단소송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게 고작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미국처럼 집단소송이 쉽지 않은 만큼 정부가 대안을 제시해줄 필요가 있다. 연비 부풀리기는 자동차 업체에 대한 신뢰의 문제이자 소비자 보호 문제인데 동전의 한 면만 봐선 안 된다. 법에 소비자 보상계획제출명령권을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국토교통부의 설명마저 없었다면 정부의 안중에 정작 소비자는 없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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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시의적절한 입법으로 책임행정을 펴지 못한 채 법원에 판단과 책임을 미루는 무소신 행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처럼 무능하고 소신 없는 행정은 자동차 연비 부풀리기 대응에 그치지 않는다. 정부는 통상임금 산정기준,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하는 데 따른 임금보전 문제 등 여러 노사 이슈에 대해서도 대법원에 판단을 미루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왔다. 심지어 통상임금의 경우 대법원이 지난해 말 산정기준과 관련한 판결을 했는데도 아직 이를 반영한 법안조차 매듭짓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노사협상은 줄줄이 지연되고 있는 형편이다.

정부는 연비 부풀리기 피해보상 문제를 나 몰라라 하면서 법원에만 떠넘길 게 아니라 국제기준에 맞는 검증과 소비자보호 체계부터 제대로 갖춰야 한다. 업계와 소비자를 대하는 정부의 저울추가 한쪽으로만 기울면 한국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만 갉아먹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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