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오로라공주를 죽인 사회

‘다섯 명을 죽였다. 그래도 용서는 바라지 않는다.’ 지난해 개봉돼 화제를 모았던 영화 ‘오로라 공주’의 여주인공은 법의 심판보다 직접 단죄를 택했다. ‘오로라 공주’는 여섯 살 난 자신의 딸을 성폭행한 뒤 살해한 범인과 방조자들을 찾아내 차례차례 죽이는 복수극을 다룬 영화다. 주인공은 복수현장에 딸이 좋아했던 오로라 공주 스티커를 붙임으로써 딸의 넋을 달랬다. 만화 속 주인공 ‘오로라공주’는 다름 아닌 딸의 분신이었다. 잔혹하고 끔찍한 장면이 많아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했지만 주인공의 보복 살인에 공감하는 관객들이 적지 않았다. 최근 또 한명의 오로라 공주가 한줌의 재로 변했다. 짐승만도 못한 50대 이웃집 사내는 손녀뻘 되는 어린 여자 애를 성추행하려다 반항하자 목을 조르고 칼로 찌른 뒤 급기야 불까지 태워 파묻었다. 그렇게 열한 살 소녀는 채 꽃봉오리도 피우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사내는 사람의 탈을 쓰고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 영화 속 주인공이 품었던 분노와 증오가 관객들에게만 전해지는 건 아니다. 현실에서도 충분히 살아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우리 주위에서 흔히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한해 13세 미만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 사고는 신고 건수만 783건에 달했다. 15세 이하 어린이들로 그 범위를 넓히면 1,200여건에 이른다. 하루 3명 이상의 어린이가 추악한 어른들의 욕심에 애꿎게 희생됐다. 신고 건수만 이렇지 두려워서 혹은 망신스러워서 쉬쉬하며 속앓이를 하고 있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실상은 훨씬 더 심각하다. 성범죄 전과자의 경우 재범률은 다른 범죄보다 훨씬 높은 16%에 이른다. 이번 사건의 범인도 성폭력 전과자였다. 뒤늦게 정부와 정치권 사회단체 등에서는 성범죄 예방 대책마련에 호들갑이다. 여야는 전자팔찌 의무화, 성폭력범 얼굴공개, 관련법개정 등 뒷북 치느라 야단이다. 성폭력 범죄, 특히 어린이를 상대로 한 성추행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도 말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떠드는 이 같은 흥분과 호들갑은 15년 전에도 똑같았다. ‘나는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 짐승을 죽였다’고 절규하던 김부남 여인을 떠올리면 우리 사회의 냄비근성이 새삼 서글프다. 아홉 살 어린나이에 동네 아저씨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그 후유증으로 두 번의 결혼생활마저 파탄을 맞아야 했던 김 여인은 지난 91년 1월 21년 전 자신을 강간한 이웃집 사내를 찾아가 살해했다. 김 여인을 괴롭혔던 성폭행의 악몽은 21년이 지나도록 흔적이 지워지지 않았다. 김 여인은 스스로 가해자를 벌하기로 마음먹고 식칼을 들고 가서 가해자를 살해한 후 현장에서 검거됐다. 이 사건은 어린이 성폭력의 후유증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였다. 이후 언론과 정부는 벌집 쑤셔놓은 듯 떠들썩했고 성폭력범에 대한 단죄를 강조했다. 그러나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오로라 공주나 김 여인과 같은 성폭력 희생자들은 여전하다. 최근 이용훈 대법원장은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해 엄격한 처벌을 강조했다. 재판은 국민 대다수가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결과가 공정하고 보편 타당하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훌륭한 재판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도 했다. 성추행 후 집행유예로 풀려나 10만원을 들고 와 합의하라고 협박했다는 대목에서는 법의 존재가치가 의심스럽다. ‘법대로’ 한 결과가 또 다른 오로라 공주를 낳았다면 그 ‘법대로’에는 분명 잘못이 있다. 화이트칼라 범죄뿐 아니라 인성을 파괴하는 범죄에 대해서도 보다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 지금 이순간에도 수많은 제2의 오로라 공주와 김 여인이 공포에 떨며 그 사내를 저주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다시는 이땅에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보다 철저한 사회적 감시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그래야 자식 가진 부모들이 이땅에서 안심하고 애들을 키울 수 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당연한 책임이고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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