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서울 마포구 가든호텔에서 열린 중견기업연구원의 '정책 세미나' 현장. 중견기업 정책의 싱크탱크 역할을 할 연구원이 출범하는 자리였지만 중견기업인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기업을 규모 기준으로 단순 분류해 규제하는 '규모 의존 정책' 속에 중견기업을 대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정부의 성장 사다리 정책이 무색해지고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각 부처와 기관의 주요 정책과제에는 '창조경제' 못지않게 '성장 사다리'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중소·중견기업을 키워 우리 경제의 허리를 튼튼히 하겠다는 구상에서다.
그러나 여전히 중견기업을 대기업(상호출자제한집단)과 동일시하는 규제 때문에 각종 지원정책이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대표적인 예가 2월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재지정된 '주조' 품목이다. 정부는 자동차·로봇·정보기술(IT) 등 미래 신성장동력 산업의 근간이 되는 주조와 금형·용접 등 '공정기술'을 뿌리기술로 지정하고 지난해 7월 '뿌리산업 진흥과 첨단화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중견기업을 포함한 중소·중견 뿌리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그런데 중기 적합업종 재합의 과정에서 중견기업마저 주조 분야에 신규 진입하거나 사업을 확장할 수 없게 되면서 정작 연구개발(R&D) 투자와 일자리 창출 여력이 큰 중견·대기업의 시장 참여가 막혀버렸고 관련정책은 반쪽짜리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소프트웨어(SW) 분야 대기업의 사업범위를 제한하는 SW산업진흥법도 마찬가지다. 법률상 중견기업은 대기업으로 분류돼 더존비즈온 등 토종 SW업체들은 중견기업이지만 민간 SW시장에서도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에만 입찰하도록 제한을 받는다.
지원정책을 늘리기보다 중견기업의 성장을 막는 대못 규제부터 뽑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올 한해 중기청의 중견기업 육성 관련 예산은 878억원으로 지난해보다 27.2% 늘었지만 정책효과를 축소하는 각종 규제로 예산투입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성장 사다리를 주요 정책과제로 내세운 박근혜 정부가 집권 3년차를 맞았지만 중견기업들이 성장을 기피하는 '피터팬 증후군'은 여전하다. 지난해 중견련이 1,545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2014 중견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기업의 8.9%가 중소기업 회귀를 검토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승일 중견기업연구원장은 "정부 부처 내에서도 중견기업 육성정책과 규제가 엇박자를 내다 보니 지난해 중견기업특별법이 마련됐는데도 뚜렷한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며 "우월적 지위남용 가능성 등을 중심으로 중견기업에 대한 규제를 결정해야 하는데 단순하게 규모 중심으로 규제와 지원을 결정하다 보니 성장을 기피하는 피터팬 증후군이 만연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