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박근혜 대통령 뉴질랜드처럼 농업개혁할 각오 돼 있나

오늘날 대한민국 농촌은 보조금을 둘러싼 모럴해저드로 찌들 대로 찌들어 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강원도의 한 농촌에 정부로부터 마을정비를 위한 보조금이 지급됐다. 몇 가구 되지도 않았는데 액수를 들으면 깜짝 놀랄 수준이었다. 이 많은 돈은 어디에 쓰였을까. 마을을 지나는 도로에 주민들이 찍은 여러 유형의 사진들이 나붙었다. 도로 한구석에는 동네 주민들의 노력동원으로 도라지도 심었다. 그뿐이었다. 액자도 없는 사진들은 여름철 비바람에 시달리더니 어느 날 조용히 사라졌다.


농촌 보조금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비료를 사도, 비닐하우스를 지어도 80% 가까운 보조금이 나온다. 트랙터 구입에도 보조금이 나오고 운전에는 면세유가 제공된다. 농업용 전기료는 거의 공짜나 다름없다.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될 때마다 농업 보조금 규모는 팽창했고 여태껏 40조원 이상의 보조금이 각종 명목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그럼 우리 농업은 상전벽해가 됐을까. 거꾸로다. 농가는 여전히 보조금에 열중할 뿐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자발적이고 창의적 노력이 식어가는 반면 지원에만 눈이 멀고 보조금이나 기웃거리는 풍토가 고착했다. 그 결과 농촌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가가치 비중은 2004년 3.2%에서 2013년 2.1%로 악화했다.

19일 농림축산식품부 주관으로 경기 안성시 안성팜랜드에서 '농업 미래성장산업 대토론회'가 열렸다. 이번 토론회는 한중, 한·뉴질랜드 등 동시다발적으로 체결되는 FTA와 쌀 시장 개방 등을 계기로 농업을 미래 성장산업이자 수출전략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해법을 찾기 위해 마련됐다고 한다.


그러나 토론회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실망스러웠다. 대통령은 "지금 이 순간이 우리 농업과 농촌이 한 단계 도약하느냐 아니면 추락하느냐를 결정짓는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하면서도 또다시 "농업 분야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발언을 잊지 않았다. 농식품부 역시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수출 확대 및 성장동력' '6차산업화' 등의 캐치프레이즈를 화려하게 내세웠지만 그런 발언의 어느 구석에서도 정작 농업개혁에 관한 문제의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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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병을 고치려면 질병의 원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우선돼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 농업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진단과 처방은 없이 그저 장밋빛 청사진만 그리고 있지 않은가.

농촌 문제에 대해서는 차라리 전 정권인 이명박 정부가 더 큰 위기의식을 갖고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 뉴질랜드를 방문한 자리에서 "농업개혁 이전의 뉴질랜드처럼 한국 농촌은 여전히 (정부) 지원을 받아서 하고 있다"며 "우리는 전반적인 농업정책이 지원정책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비록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뉴질랜드식 농업개혁 추진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뉴질랜드 농업도 항상 잘 나간 것은 아니다. 과거 한때 축산농업 국가로 영국이라는 안정적 수출시장 덕분에 호황을 누렸으나 1960∼1970년대 국제 농산물 가격 폭락과 오일쇼크 등으로 고사 직전까지 갔다. 정부는 위기 타개를 위해 대규모 농업보조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농민들의 모럴해저드가 심화했다. 보조금이 농가의 주요 소득원이 되면서 정부 재정은 고갈돼갔다. 1983년 농가소득 중 정부 보조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35%까지 올라갔다.

뉴질랜드 정부가 개혁의 칼을 들이댄 것은 1984년. 이때 거의 모든 농업보조금을 일시에 철폐했다. 처음에는 농민의 강한 저항에 직면했다. 당초 정부가 보조금을 철폐하면서 예상한 농업 실패율도 10%대였을 정도다. 그러나 개혁 5년 후 실패 농가는 1%에 그쳤고 나머지 99%의 농민은 스스로 경쟁력 향상에 매진했다. 보조금 철폐 이전에 연 1.5%에 불과했던 생산성은 연평균 6%로 상승했다. 정부의 혹독한 개혁이 오히려 농가의 경쟁력을 강화해 뉴질랜드는 다시 세계적 농업강국의 입지를 굳히게 된 것이다.

현 정부가 진정으로 이 나라의 농촌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한편 농업을 신성장동력을 삼으려 한다면 개혁이라는 사랑의 매부터 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 개혁은 표 관리 외에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는 마구잡이 보조금 철폐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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