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특파원 칼럼] 게임 체인저 노리는 중국

베이징특파원 김현수 hskim@sed.co.kr


크림반도에서의 나비 날갯짓이 유라시아 대륙을 건너 베트남 동쪽 445㎞에 위치한 파라셀군도(중국명 시사군도, 베트남명 호앙사)를 폭풍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라는 지리적 위치가 다르고 역사적 배경도 다른 크림반도 사태가 왜 파라셀군도에 영향을 미칠까. 크림반도와 파라셀군도는 '미국의 힘'이라는 연관성을 가진다. 시리아에 이어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에서 보여준 미국의 무기력함은 중국이 과감한 행동에 나설 수 있는 자신감을 줬다.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전략과 중국 포위 전략이 못마땅했던 중국으로서는 연이은 미국의 약세를 틈타 남태평양에서 미중 간의 역학관계를 재배치하겠다는 속내를 분명히 드러냈다.


왜 필리핀이 아니고 베트남일까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겪고 있는 대표적 나라는 일본과 필리핀, 베트남 세 나라다. 일본과는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를 필리핀과는 스프래틀리군도(난사군도), 베트남과는 파라셀군도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중국과 베트남은 지금까지 영유권 문제를 놓고 대화와 협조가 비교적 잘 이뤄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번 파라셀군도 시추선 충돌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특히 지난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주변국 외교 전략에서 일본과 필리핀을 예외로 뒀을 뿐 베트남은 '친(親)·성(誠)·혜(惠)·용(容)'이란 원칙의 틀 안에 뒀다. 실제 지난해 10월 베트남을 방문한 리커창 중국 총리는 응우옌떤중 베트남 총리와의 회담에서 "양국이 해상 개발공작팀을 구성해 남중국해의 유전과 가스전을 공동 개발하자"고 합의했다. 그런데 불과 7개월 만에 중국은 태도를 바꿔 독자적으로 석유 시추에 나섰다. 최근 일주일 새 베트남 해안경비대 소속 초계정과 중국 선박의 잇단 충돌로 9명의 부상자가 났는데도 시추를 강행하는 중국의 태도는 과거와 다르다. 과거 중국은 두 차례의 파라셀군도에서 자원 탐사를 시도했지만 베트남이 반발하자 멈췄었다.


중국의 의도는 남중국해 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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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이 아닌 베트남을 분쟁 대상으로 선택한 중국의 의도는 뭘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4개국 순방에서 일본과 필리핀의 분쟁 지역을 미국과의 안보 조약에 넣었다. 따라서 필리핀과 당장 맞부딪치기는 중국 입장에서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베트남은 상황이 다르다. 중국에 고분고분하진 않지만 미국과 손을 잡는 극한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정도의 대화 채널은 언제든 가능하다. 베트남이 중국의 입장에서는 리스크를 최소화하며 미국의 힘을 시험해볼 수 있는 최적의 대상인 셈이다.

파라셀군도에 대한 분쟁의 의도는 분명하다. 남중국해 전체를 중국의 통제 아래에 두며 미국의 아시아 전략을 무력화시키겠다는 것이다. 여기다 남중국해의 석유·천연가스 물동량은 중국으로서는 놓칠 수 없는 이권이다. 파라셀군도 시추를 통해 남중국해에 대한 영유권을 기정사실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중국은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 선포에서 이런 전략이 성공했다. 방공식별구역 선포 당시 미국과 주변국의 강한 반발이 있었지만 6개월이 지난 현재 방공식별구역은 사실상 묵인되고 있다.

중국이 선택하는 게임

중국의 노림수는 미국의 아시아 지역 동맹 강화에 나선 것에 대한 대응이다. 중요한 것은 대응의 수단을 영유권 분쟁으로 삼으며 지역 내 게임 체인저로서의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중국이 만들어내고 있는 국제 정세 변화는 단순히 주요 2개국(G2)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있지 않다는 비판을 넘어 그들이 추구하는 최종 목표에 대해 면밀히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예상치 못한 이벤트로 게임의 주도권을 잡으려고 하는 중국의 전략이 한반도에도 적용되지 말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6자회담으로 북핵 문제를 풀려는 중국의 전략도 한반도에 대한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한 수단으로 읽힌다.

한반도를 둘러싼 변화에서 G2의 균형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물론 여전히 한반도에 대한 게임 체인저의 역할은 미국이 쥐고 있다. 하지만 시리아, 크림반도에서 약해진 미국의 힘을 놓치지 않고 게임 체인저로 부상하려는 중국의 전략도 세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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